정애야,
촛불 하나 타오르는 밤..
한 해의 막바지에서 우리도 촛불처럼
마지막 순간에 더욱 빛나는 사람이 되어야 할 것 같다.
안녕..
왜 그런지 펜을 들기가 힘이 들었단다.
이처럼 하얀 종이 위에
내 감정의 찌꺼기들이 정화되지 못한 채 놓여진다 생각하니
부끄러웠다.
하지만 이 마지막 순간만은 놓치고 싶지않은 간절함이 있단다.
한동안 소홀했던 나를 반성해 본다.
난 왜 그렇게밖에 할 수 없었나?
많이 울어버렸단다.
만남..이 하나의 끈 때문에
때론 괴로왔고 때론 서러웠고 때론 원망도 해보았지만..
정애야..
그 모든 번민의 날들이 나를 조금은 더 크게 했음을 느끼고 있다.
그래서 후회는 하지 않는다.
만나고 헤어지는 것이 어쩌면 숙명일지 모른다는 생각을 해 본다.
헤어짐..
그건 슬프도록 아름다운 언어이기에..난 차라리 기뻐하고 있다.
헤어짐 뒤에 따라 오는 그리움..
이 또한 얼마나 순결한 언어인가!
미치도록 그리운 누군가가 있다는 건 또 하나의 행복이다.
그리워서 흘리운 눈물..그건 사랑이 아닐까?
그러나 난 아직 모르겠다.
사랑..그 진실한 의미를..
우린 소중하게 살아야 한다.
저렇게 강렬하게 타오르는 불꽃도 언젠가는 꺼지기 마련..
우리의 생명도 타오르는 불꽃과 같은 것이기에..
그냥 스치우는 만남일지라도 아끼고 사랑해야만 한다.
정애야,
넌 별빛을 사랑하니?
언제나처럼 이 밤의 정적 위로 쏟아내리는 별빛을 보며
꿈과 소망을 키워왔고..
친구를 그리워했고..
누군가를 위한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이렇게 모든 것들이 하나의 영상처럼 스쳐지나 버리고 ..
올해도 서서히 작별을 할 모양이다.
이제 가면 영영 못 올..오늘..이 밤..이 순간..
그러나 우리네 사람들은 헤어지면서도 만남을 기약할 수 있기에..
얼마나 다행한 일일까?
산다는 건 아름다운거야.
이렇게 하늘과 땅을 호흡하고 있다는 것..
이것 하나만으로도 커다란 은총일 수 있는거야.
정애야,
여고시절 우린 눈부시도록 하얀 순수의 빛깔을 소유했었다.
이제금 그 빛깔은 알게모르게 퇴색해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난 그게 왜 그리 슬픈지 몰라.
모든 것을 소중히 간직하고픈 이 마음을 ..이 사회환경이 가만두질 않는다.
이래저래 바쁜 현실에 급급하다보니
보다 소중한 것들을 잃어가고 있는 것 같다.
찾아야겠다. 잃어버린 소중한 것들..
소녀적 티없이 높아만 가던 이상과 꿈..그리고 사랑..
정애야,
나 참 허황하지?
네게 편질 띄우면서도 마음이 혼란하구나!
어떻게 지내니?
대학 과는 정했는지 궁금하구나!
무엇보다 네 적성에 맞고 네가 좋아하는 과를 선택하는 게 중요해.
그리고 졸업 후의 취업문제도 고려해볼 필요도 있지만..
그래도 대학의 진정한 의미가 무엇인지 생각하고 신중히 선택하도록 해!
난 절실히 후회했지만..
이왕 들어선 이 길에서 최선을 다할 각오가 되어있단다.
보다 중요한 건 마음..인거야.
마음먹기에 따라 우린 얼마든지 이 생의 고난을 극복할 수 있으리라..믿는다.
정애야,
밝고 건강한 새해 맞이하고 ..항상 그러하길 빌며..네게 행운을 띄운다.
언제나 행복한 사람으로 살아가길..
86년 12월 31일..숙..
♬~~양하영/ 촛불 켜는 밤
- 벗 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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