맏아부지 먼길 보내 드리고..
큰집 식구들 떠나는 것 보고..
친정식구들과 주차해둔 마을회관으로 가는 길..
보면 볼수록 정겨운 내 고향마을..
♥
옛 큰집 터
마을입구에 있는 작은 연못..
저 연못가 저 감나무가 있는 자리가 예전 큰집이 있던 터이다.
울 엄마 시집오고 3년은 큰집에서 살다 분가했다 하셨으니..
정작 내가 태어난 집은 저 큰집이다.
어릴 적엔 저 연못이 정말 정말 크다고 생각했었는데..
한겨울 연못에 얼음이 꽁꽁 얼면 엄마 손 잡고 얼음 지치던 생각이 난다.
그리고 저 연못가에서 두꺼비 한 마리가 기어 나와.. 기암을 했던 기억도 나고..
추운 겨울날 큰집 처마 아래 고드름이 조롱조롱 열리면..
햇살 따스한 흙담에 기대어 규태오빠랑 나랑 동갑이던 정태랑..
초가지붕 아래 매달린 수정 같던 고드름을 똑똑 따먹던 기억..
1438
이 골목길도 기억이 난다.
그 땐 초가집들이었고.. 담은 황토로 만든 흙담이었다.
왜 그랬는지 모르지만 네다섯 살쯤의 나는
저 흙벽의 황토흙을 떼서 먹곤 했다.
무슨 비스켓인 양 맛나게 먹었었다.
내가 삼십 대 초반에 맹장수술을 한 건.
어렸을 적 저 흙담을 떼어먹어서 그런 게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 정도로..
저 골목길을 얼마나 수없이 오고 갔을까..
어둔 밤에 큰할매 손 잡고 어느 굿하는 집에 갔던 기억..
누구네 집에 마실 갔던 기억..
엄마 아빠 뒷산에 밭일 나가시면 네다섯 살쯤의 내가
세 살 터울의 동생 랑이를 낑낑 업고 오갔던 길..
내 고향마을..
저 아래 파란 지붕 옆이.. 우리 집 터가 있던 자리..
내가 태어나고 다섯 살 적까지 살았던 내 고향마을..
내 소꿉친구 부남이네 집이 보이고..
팔촌인 상필이 오빠네 집도 보이고..
엄마 아빠 뒷산에 밭일 가시면 동생 랑이랑 나와 앉아있곤 하던
집 앞을 돌돌 흐르던 시냇가도 보이고..
엄마 아빠 분가하시면서 아빠가 뒷산의 소나무를 캐와
직접 지으셨다는 우리 집..
오며 가며 동네 사람들이 집이 예쁘다 다들 한 마디씩 했었다는데..
어느 약방에서 집이 예쁘다고 통째로 뜯어가서
약방을 지었다고 하는 내 유년의 집..
지금은 집터만 남아있어 아쉽지만..
내 기억 속에 내 유년의 집은 고스란히 남아 있다.
마당을 들어서면..
왼쪽에 심은 지 얼마 되지 않는 키 작은 감나무가 한 그루 있었고..
그 감나무 옆에 닭장이 있었고..
그 옆에 엄마가 개떡을 만들곤 하던 가마솥 아궁이가 두 개 정도 있었는데..
엄마가 "숙아 개떡 좀 갖고 와라.."
그러면 나는 무거운 무쇠솥 뚜껑을 낑낑 열고
쇠젓가락으로 개떡을 쿡 찔러 가져갔던 기억도 난다.
그리고 어린 눈엔 참 넓고 정갈했던 앞마당..
햇살에 반짝이던 길고 좁다란 툇마루..
그 툇마루에 앉아 그 특유의 눈웃음으로 환하게 웃으시며..
" 숙아..숙아.." 나를 부르시던 울 아빠..
아빠 곁으로 쪼르르 달려가 아빠 무릎에 얼굴을 묻곤 하던 어린 숙이..
그런 일련의 기억들이 영화 속 한 장면처럼 펼쳐진다.
슬프고도 아름답게..
고향 뒷산의 가을은 여느 산의 가을보다 더욱 고왔다.
내 유년의 가을도 저리 고왔을 테지..
- 벗 님 -
감나가무가 익어가는 마을 꼭 우리 고향마을 같습니다
흙담벽을 뜯어먹어서 이처럼 건강하실수도.....ㅋㅋㅋ
고향...
생각만해도 미소가 지어지는 단어입니다...^^*
참 아늑함을 주는 말입니다.
저도 그 고향이 있는데요...
아버지께서 장만하신 토지중에 상징적으로
100평을 얻어서 지금 있습니다.
그 100평 때문에 영원히 벗어나지 못할지도 모르겠구요.
참 아늑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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