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추억/스무살 이야기

난 아직 어리기만한 걸

by 벗 님 2011. 9. 1.

 

 

 

 

86년 6월 5일. 흐리고 바람.

 

 

 

 

 

축제 마지막 날..

날 듯한 기분으로 아침을 맞이했다.

그와의 약속시간을 지키지 위해 설렘을 안고 부랴부랴 걸음을 옮겼다.

그러나..그뿐..

오늘 하루 내게 남은 건 무언지..

하루를 돌아볼수록 자신이 미워진다.

 

나란 아이을 내가 알 수가 없다.

순수한 마음으로 모든 것을 사랑하리라..그리고 진실하게 살아야지..

그와 나..

우리둘은 어떡해야하나..

난 어찌해야 하나..

모르겠다 .

알 수가 없다.

 

친구..

난 아직 어리기만 한 걸..

사랑을 알기엔..받아들이기엔..

내 마음이 너무 여리기만 한 걸..

그리고 아직은 그냥 모르고 싶은 걸..

두려운 걸..

 

 

아직도 두렵다.

그와의 만남이 서로의 가까워짐이..

차라리 혼자이고 싶다.

차라리 외로와지고 싶다.

 
 

내 지나온 삶이 그랬듯이 만남이 있어 기뻤고 외롭지 않았다.

그러나 처음으로 다가온 이성과의 만남..

이렇게 큰 불안감과 두려움을 주는 건 왜인지..

내가 어린 걸까..

그와의 만남이후의 내 행동들이 과연 바른 행동들이였을까..

아~난 그냥 순수한 마음으로 받아들였었는데..

 
 

아직도 이성간의 사랑을 알기엔 까마득하다.

 사람들이 나를 표현하는..순진하다..

이건 어리석고 아무것도 모른다는 말과 통한다.

 

남자..

내게 있어 아무런 의미도 아니였던 존재..

 지금도 별다름이 없건만..

 

 

벗님이에게서 편지가 와있었다.

방문을 연 순간 ..어둠속에 자리잡은 하얀 봉투가 얼마나 내맘을 설레이게 했고..

충만하게 했었는지..

 

문득..선생님이 그립다.

 

 

 

 

 

 

 

 

86년 6월 6일. 04시 55분. 비.

 

 

 

<도대체 우리가 사람을 만나고 사귀고 하는데

  무슨 목적으로 ..무엇을 이루기 위해서라는 단서가 꼭 필요한가?

  그 목적을 생각하는 것은 순수치 못한 것이다.>

 

 

시내를 나갔다.

뚜렷한 목적 없이 끌리다시피 돌아다녔다.

조금은 즐거웠다.

그러나 남는 건 없다.

<매트헌터> 영화 한 편을 보고..택시로 왕래했다.

세상은 자꾸 편하고 환락적인 곳으로만 향하고 있다.

진정한 목적과 인간 본연의 자세를 잃어버린 채 순간의 쾌락에 발을 담그고 있다.

 

차라리 그 시간동안에 책이나 읽었더라면..

그래도..버지니아울프의 생애를 그린..목마를 타고 떠난 그대..라는 책 한 권을 선물받아서

마음은 충만하다.

시간을 헛되이 보내버린다는 것은 자기삶을 잃어버리는 거나 다를 바 없으리라..

소중한 순간순간을 아끼고 보듬어야 하리라.

 

 

 

<도대체 우리가 사람을 만나고 사귀고 하는데

  무슨 목적으로 ..무엇을 이루기 위해서라는 단서가 꼭 필요한가?

 그 목적을 생각하는 것은 순수치 못한 것이다.>

 

 이 말을 다시 한 번 되뇌인다.

그와 만나면서 생각했던 내마음과 일치한다.

정말 아무런 목적도 이유도 없이 만남..그 자체를 생각했다.

 

뭐라 말로 표현하기가 힘이 든다.

 

좋아한다..

사랑..

결혼..

 

만남이 있으면 이별이 있기마련이고

좋다가도 싫어지는 게 우리네 사람들의 마음일진대..다 부질없다.

 

오는 느낌 그대로를 받아들이고..전하고픈 느낌 그대로를 전하면 그 뿐이다.

그래서 싫어지면 그 또한 미련두지 말일이다.

진실..그대로가 가치없어진다면 모든 게 부질없어질게다.

 

아직도 혼란하다.

내가 써놓고도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스무살 일기 中 >

 

  

 

 

 - 벗 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