붕선화를 보면 항상
엄마와의 유년의 추억이 떠오른다.
무명실 매어 손톱마다 봉숭아물 들여주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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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집 점빵하는 영자언니네 마당 한가운데에는
동그란 꽃밭이 있었다.
해마다 이맘때면 영자언니네 꽃밭 가장자리엔
채송화랑 봉선화가 알록달록 예쁘게 피었었다.
나는 점빵집 오가는 척하며 ..
영자언니네 봉선화를 몰래몰래 한움큼씩 따오곤 했었다.
그때마다 간이 콩닥콩닥 거렸었지만..
봉선화 꽃향은 달큰했고 "나를 따 가라 따 가라.."
내게 자꾸 말을 거는 듯 했다.
봉숭아 필 적이면..
엄마는 내 작은 손톱에다 봉숭아물을 들여주시곤 했었다.
작은 종지에다 봉숭아꽃이랑 초록이파리를 넣어 콩콩 찧으시며..
봉숭아 붉은 꽃잎보다 초록이파리가 더 짙게 손톱을 물들인다는 말씀도 해주셨다.
그렇게 열 손톱마다 짖이겨진 봉숭아꽃잎을 얹고..
봉숭아 초록이파리로 감싼 뒤..하얀 무명실로 칭칭 동여매 주시곤
내일 아침까지 고대로 두어라 당부하시곤 했는데..
어린 나에게 다음날이 되도록 손이 자유롭지 못한 것은 큰 고역이였다.
그래도 손톱이 빨갛게 물들 것을 상상하며 참아냈었다,
다음날 아침 일어나자마자 손톱에 칭칭 동여 맨 무명실을 풀어보면..
밤새 뒤척인 손톱 위의 봉숭아들은 이리저리 난리가 났고..
손톱 뿐만 아니라 손톱주변의 손가락까지 발갛게 물들기 일쑤였다.
그래도 좋았다.
발갛게 물든 내 손톱이 난 무척 맘에 들었었다.
그 어린날의 추억때문인지..
난 지금도 손톱에 봉숭아물을 들인다.
요즘은 다들 손톱관리 받는 곳에서 돈을 들여 매니큐어나 젤 같은 걸로
손톱을 알록달록 반짝반짝 예쁘게 치장하지만..
봉숭아꽃물 든 촌스런 내 손톱이 내 눈엔 참 예쁘다
- 벗 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