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보문고 가는 길..
하오의 햇살이 따갑다.
고깃집과 술집이 즐비한 먹자골목 안..
해물탕집 앞에 핀 햇살같은 노오란 해바리기꽃..
♥
1591
그 아이 성은 구씨였다.
성이 특이하고 예뻤다.
이름은 가물가물 기억이 나질 않는다.
어느 날 우리 동네로 이사 온 아이..
키가 크고 통통하고 뽀얀 살결..
한 눈에도 서울아이 같았다.
그 시절 서울아이는 귀했고..
서울말씨는 뭔가 모르게 특별하고 예쁘게 느껴져..
촌스런 경상도 사투리를 쓰는 자신이 괜히 주눅 들곤 했었다.
딋산 바로 아래 있는 우리 골목 제일 끝집에 살았었는데..
그 집 바로 뒤에는 우물가가 있었고..
바로 맞은 편엔 잘 생긴 대학생쯤으로 보이는 총각오빠가 사는
우리동네 유일한 초가집이 있었다.
그 아이 집 대문 옆에는 해바라기가 있었다.
간혹 그 아이의 집에 놀러가기도 하고..
그 아이도 우리집에 놀러온곤 했었는데..
둘이 무엇을 하며 놀았는지에 대한 기억은 거의 없다.
다만..어느날 그 아이가 자기집 대문 옆에 핀 해바라기꽃을 구부려..
그 안에 알알이 박힌 해바라기씨앗을 한움큼 따다가..
먹어보라며 내 작은 손에 쥐어주던..그 순간..그 찰라..만이..
아주 선명히 떠오른다.
이상하게 해바라기만 보면 그 아이와 함께 그날의 기억이 떠오른다.
그 아인 우리 동네에 잠깐 살다가 어느 날 홀연히 이사를 가버렸기에..
해바라기만 아니라면 난 그 아이를 까무룩 잊어버렸을 것이다.
그런 아이가 우리동네 살았었던가..기억조차 못했을지 모른다.
내 유년의 해바라기에 대한 추억은
구씨 성을 가진 예쁘장하던 그 아이다.
- 벗 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