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표 앞에서 갈 길을 체크하는 내남자..
일단 다음 코스인 상왕봉을 향해 내가 먼저 출발합니다.
그러고 보니..
산길에선 우리 둘이 나란히 걸은 적이 별루 없는 듯 합니다.
자기 페이스대로..그냥 개인플레이 합니다. 우린..
상왕봉 가는 길에 만난 절경..
잠시 멈추어 가쁜 숨 고르고..
저 산들의 위용을 잠시 바라봅니다.
저기가 상왕봉일까요?
이미 정상에 서 있는 사람들..
언제나 부러운 모습이지요.
아직 상왕봉은 한참 멀었습니다.
우리는 그곳에 가서 점심을 먹기로 합니다.
갈수록 눈이 푹푹 쌓인 길이 됩니다.
갈수록 인적도 드문해집니다.
드디어 두 번째 봉우리인 상왕봉에 도착했습니다.
이곳에서 둘이 함께 인증샷을 찍고 싶었는데..
사람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길래..
상왕봉에서 바라본 풍경..
산세도 산세지만..
산을 타고 넘어 오는 듯한 구름 또한 절경이였습니다.
어딜가나..간절한 마음이 담긴 소원의 돌탑은 쌓여지고..
나는 또 내 삶에게 오만해져 저 돌탑을 그저 무심히 바라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 상왕봉에서 점심을 먹으며 잠시 휴식합니다.
날도 따스하고 산정이지만 바람도 없어 여유로이 점심을 먹기 딱입니다.
우리도 약간 아래쪽 양지녘에서 김밥과 컵라면으로 산정소찬을 차립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상왕봉에서 하산해서인지..
두로령 가는 길엔 사람의 발자욱이 뜸합니다.
이 길을 지나간 사람이 몇 안되는 듯 합니다.
다행히 이렇게 앞서간 발자욱이 있어..
내남자와 난 이 발자욱만 따라 갑니다.
인적도 드문해지고 눈길은 더욱 깊어만 가고..
이 깊은 설산에 내남자와 나..단 둘이만 있는 듯..
적막합니다.
점점 발자욱 수도 줄어가고..
그러나 햇발에 반사하는 새하얀 눈밭은
반짝반짝 눈이 부십니다.
참..뜬금없이 내남자 뒤로 벌렁 누워버립니다.
푹신할 거 같은 눈밭이 의외로 딱딱해 조금 아파 합니다.ㅋ~
요즘들어 엉덩이도 업되고 허벅지 근육도 딴딴해졌다고..
나더러 함 만져보라고..자랑질인 내남자..
내남자 눈밭에 뒹굴고 노는 동안..
내 그림자랑 놀고 있는 나..
아무래도 산짐승의 발자욱인 거 같은데??
내가 가진 무기라곤 스틱밖에 없어..
가는 내내 스틱을 잡은 손에 힘이 들어갑니다.
내남잔 한참 뒤에 쳐져 있고 인적도 하나 없고..
어디서 멧돼지라도 돌연 출연할까봐..
콩닥콩닥거리며..
산 봉우리에 구름이 걸려있습니다.
아마..저 봉우리가 우리의 다음 예정지인 두로봉일 듯 합니다.
예서 보면 까마득해 보이지만..가다보면 어느새 가 닿고..닿아..
봉우리 하나 하나를 넘을 때마다 느껴지는 짜릿함이 있답니다.
종아리까지 푹푹 빠지는 눈길..
자칫 옆으로 잘 못 디디면..
다리 하나가 통째로 빠져 버리는 깊이입니다.
우리 앞을 지나간 저 발자욱이 얼마나 고마운지 모릅니다.
우리는 저들의 발자욱만 조심히 따라 가면 되지만..
저들은 여기저기 푹푹 빠진 흔적이 있는 걸로 보아..
제길을 찾느라 몇 번의 시행착오를 겪으며 지나간 듯 했습니다.
앞서간 발자욱에서 옆으로 조금만 비껴 디뎌도
내남자 허리까지 저리 푸욱~빠지는 깊이입니다.
가히 폭설이 내렸다 할만 하지요?
나도 저렇게 서너번을 빠지면서 앞으로 전진하고 있는 중입니다.
이제 산 한 고비를 다 넘은 듯 합니다.
도저히 걸어서는 내려갈 수 없는 아주 가파른 길이 나타났습니다.
에라~모르겠다 그냥 미끄럼을 타고 주우욱 미끄러져 내려갑니다.
너무 신이 나서 환호성이 절로 났어요.
우리가 내려오고 잠시 뒤 두런두런 말소리가 들리더니..
부부 한 팀이 우리처럼 미끄럼을 타며 내려옵니다.
그리고 또 잠시 후에..
다른 부부 한 팀이 또 미끄럼을 타고 내려 옵니다.
다들 동심으로 돌아간 듯..웃으며 소리치며..
반가운 동행인들이 합류해서 마음이 한결 든든해 졌습니다.
우리 단 둘이서 이 폭설이 내린 후의 오대산을 어찌 넘을까..
은근 걱정이 되었거든요.
이렇게 부부 세 팀이서 오대산 종주를 향해 나아갑니다.
백두대간 두모령에서 잠시 쉬어 갑니다.
우리가 앞으로 가야 할 거리와 시간을 가늠해 보면서..
두모령에서 몇 미터 못 오르고 우린 길을 잃었습니다.
우리 앞을 가던 선구자의 발자욱이 뚝 끊어져 버렸습니다.
내남자와 저 아저씨가 길을 찾느라 방향을 잡는 곳마다
저리 푹푸욱~~빠져서는..
더 이상 나아가지 못하고 계속 제자리만 맴돌고 있습니다.
아마 우리의 길안내를 하던 발자욱의 주인공들도
예서 더 나아가지 못하고 종주를 포기해버린 듯 합니다.
너무 아쉬웠지만 우리도 결국 포기하고
다시 되돌아서 하산하기로 합니다.
아까 세 부부가 함께 걸어왔던 길을 되돌아 하산하는 길..
도로처럼 잘 닦여진 저 평이한 길이 너무 지루하다고..
하산하는 내내 내남자는 불평을 합니다.
하산하는 길..
미륵암에 들러 잠깐 볼일을 보구요.
그참..오늘 볼일 본 얘기를 자꾸 하게 되네요.
암자 마당에서 마주친 스님이
화장실이 푸세식이라고 걱정을 해주십니다.
냄새가 지독했지만..
어릴적 기억도 나고..머 참을만 했습니다.
마당의 눈을 치우느라 참 고생하셨을 스님..
마당이 질척거리니 이쪽으로 가라..하시며
친절히 안내도 해 주셨습니다.
S자로 구불불한 저 길을 얼마나 내려왔을까요?
참 길고 지리한 하산길이였습니다.
지난 가을 울엄마랑 동생 랑이랑 함께 올랐던
간월재의 하산길과 참 닮았습니다.
그래도 그땐 길가에 온갖 가을꽃이 피어 지리한 줄을 몰랐는데..
처음 계획했던 오대산 종주는 못했지만..
자연눈썰매를 타며 아이처럼 소리쳐보고..
허리까지 푹푹 빠지는 눈길을 걸어도보고..
오늘도 나는 산의 품에 안겼고 행복했습니다.
- 벗 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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