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 저녁 6시..
성환씨네랑 저녁약속을 잡았단다.
성환씨..기러기아빠 10년..
초등학교 졸업하고 유학길에 오른 큰 아들이..
미국 시민권자가 되고 미국 군인이 되어
한국에 와서 복무를 하고 있단다.
부부나이도 아이들 나이도 비슷해서..
함께 가족여행도 다니고
서로의 집도 왕래하면서 참 친하게 지냈었는데..
그로부터 10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큰 아들 수빈이가 미군이 되어 한국에 와있다 하니..
얼굴도 한 번 보고 싶고 반가워
함께 식사자리를 마련한 내남자..
성환씨네가 만두를 좋아한다기에..
내남자 예전 사무실 근처의 손만두전골집에서 식사를 하고..
홍대 근처의 설빙에 왔다.
근 10년만에 만나는 성환씨..
약간 수척해 보였고 희끗희끗 흰머리도 늘었고
왠지 기운이 없어보였다.
기러기아빠 10년..
그 세월을 어찌 말로 다 할 수 있을까..
유난히 애처가이고 다정한 아빠였었는데..
그 어린 아들과 사랑하는 아내를 멀고 먼 이국땅에 보내놓고..
10년이란 세월을 홀로 지냈을 걸 생각하니..
내 맘이 괜히 아릿해져 왔다.
꼬맹이던 아들은 어엿한 장성이 되어..
세상에 대해 거칠것이 없어보이는 청년이 되어 돌아왔지만..
다시 아이들 유학 보내던 그 시점으로 돌아가 결정을 하게 된다면..
그 세월을 돌이킬 수만 있다면..
아이들 유학은 절대 보내지 않았을거란 성환씨의 말에
많은 함축적 의미가 담겨 있음을..느낀다.
10년 전..
그 시절엔 기러기 아빠가 무슨 유행인 것 처럼..
너도나도 그렇게 아이들을 유학 보내던 시절이였었다.
수빈이 엄마랑 함께 나도 유학원엘 상담 다니며..
내남자도 아이들 데리고 한 번 나가봐라 적극 권유도 해서..
살짝 맘이 기울기도 했었지만..
난 절대 그럴 용기?가 없었다.
결국 우리는 남았고 수빈이네는 떠났고..
10년이란 세월이 흐른 지금..
수빈이네 아이들은 어쩌면 더 자유롭고 행복해 보인다.
한국에선 살고싶지 않다 하는 수빈이..
왠지 바쁘고 여유가 없어 보이고 물가도 비싸고..
그닥 살고싶은 나라는 아니란다.
수빈이 아빠의 희생으로
아이들은 훨씬 더 자유롭고 풍요롭고 넓은 곳에서..
행복한 학창시절을 보냈겠지만..
부부라는 이름과 가족이라는 울타리는
어느정도 희생이 되었을 것이다.
그 중에서도 기러기아빠로 살아온 성환씨의 세월이
나는 안타까웠다.
한창 사춘기로 자라는 아이들의 성장기를
옆에서 지키지 못한 아쉬움도 클 것이고..
품안의 자식이라고 그렇게 품에 보듬어야 할 시기에
그렇게 품어주지 못한 안타까움도 클 것이고..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아빠의 정 사랑 꾸중..
그런 일련의 끈끈한 부정의 결핍을..
조금은 느꼈으리라..
- 벗 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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