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7년 7월 26일 . 일. 비..
며칠째..비가 내린다.
그래서 내가 행복한가 보다.
비가 내리면..그냥 좋다.
왠지 내 모습과 어울리는 날이다.
빗물의 모습은 내 눈빛과 많이 닮아 있다.
내 눈은 젖어있다.빗물 고인 땅처럼..
내 눈은 그래서 슬픔을 담고 있다.
비애가 묻어나는 저 파초잎사귀처럼..
물기묻은 상큼한 잎사귀..
널다란 손짓으로 내 가슴의 멍에를 쓸어준다.
그래서 아침마다 내 방문 앞에서 나를 기다린다.
방문을 열면..슬픈 친구 잘 잤니?..하고..
청아하게 미소짓는다.
그렇게 매일 나를 맞이하던 저 넓은 가슴을 가진 잎사귀의 이름이
파초..라는 것을 안 지는 며칠 안된다.
파초임을 안 후..나는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냥..파초라는 이름이 좋아서 파초가 좋아져 버렸다.
며칠 동안 못 보면..아마 보고싶어질 거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많이 안보면 잊혀져 버릴지도 모른다.
사람의 마음이 그렇고..내 마음이 그렇다.
나도 사람이기 때문이다.
파초야..너 사랑하지 마라.
그딴 건 괜히 사람을 시름시름 아프게 할 뿐이야.
넌 무척 슬퍼해야 될거야.
그건..내 마음은 언제 변해버릴지 모르기 때문이야.
너의 지순한 잎사귀는 너무너무 아파서 이내 퇴색해 버릴거야.
저렇게 순결하고 청아하고 상큼한 초록빛깔 네 넓은 마음이..
한갖 인간의 사랑땜에 상처 입어서야 되겠니?
변덕쟁이 사람때문에 고뇌할 필요는 없다.
차라리 네 초록잎사귀에 생명을 선사하는
저 하염없는 비의 눈물을 사랑하려므나.
맹목적인 사랑으로 네 넓은 가슴 온곳을 촉촉히 축여주고 있잖니?
그리고 밤엔 별빛을 사랑하도록 해.
그리고 네 주위에서 질기게 생명줄을 부여잡고 있는..
잡초들을 사랑해라.
주인아줌마가 매일매일 뽑아내어도 자꾸만 자라나는..
저 이름없는 풀들의 억센 생명력을 사랑해라.
다시 한 번 말해 두지만..
인간의 사랑일랑은 아예..신뢰하지 말거라.
명심해 둬..
인간의 사랑이란 게..아주 고귀하고 순결하고
뭐..대단한 것처럼 사람들은 떠들어대고 있지만..
그게 다..겉하고 속하고 영 딴판인..위선..이란 거야.
서로 손을 잡고..사랑이래.
서로 몸을 꼬옥 끌어안고.. 사랑한다고 그래.
서로 입맞춤을 하면서..글쎄 그게 사랑의 표현이래.
웃기지?
정말 웃겨!
그리고 관계를 갖게 되지.
그게 사랑의 절정이라고 그렇게 생각하나 봐.
사랑이란 이름 아래..서로를 묶어매고 말아.
어떤 이들은 그렇게 매여있는 상태를 차라리 좋아하나 봐.
그러나 사랑은 속박이 아니라 자유라고 생각한다.
칫~~사랑한다구??
웃겨!!
정말 웃겨!!
도대체 뭐가 사랑이야?
사랑이 뭐냐 말이야?
욕망이 사랑이야?
쾌락이 사랑이야?
아무런 인고도 없이 이루어질 사랑이..
정말 사랑이라고 말 할 수 있어?
왜?
인간은 그렇게 본능에 굴복하는 나약한 존재인지 모르겠어.
인간의 이성..이성을 가진 동물..
아~ 정말 대개 웃긴다.
가장 근원적인 욕망 때문에 이성을 주체하지 못하는 주제에..
자기가..아쭈~~이성을 가졌다고?
집어쳐라!
개미허리가 저렇게 잘록한 게..뭣때문인 줄 알아?
인간의 허영에 찬 위선이 하도 어이가 없어..
너무 웃어대서 그런거야.
알기나 알아?
- 스무살 일기 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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