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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가족 이야기

고향산엘 다녀오다

by 벗 님 2013. 9. 3.

 

 

 

 

 

아빠의 병세가  좀 악화되셨단다.

 

새벽 4시..

내남자 청주출장길에 따라갔다가..

그곳에서 함께 울산으로 출발한다.

 

2주만에 뵙는 울아빠..몰라보게 여위셨다.

사람도 잘 알아보지 못하신다.

그냥 누워 계신 것 말고는 아무 것도 못하신다.

물이랑 죽만 겨우 드시고..

그나마도 토하시는 날이 많았다고 한다.

 

지난번 뵈올 때만 해도 혼자 걸어다니시고..

좀 마르신 것 말고는 멀쩡하셨는데..

엄마랑 랑이가 수변공원 산책 못나가게 한다고 불만도 토로하시고..

지도까지 그려가며 아빠가 묻히고 싶은 산의 위치까지 설명해주셨는데..

이제는 이 큰 딸마저 알아보질 못하신다.

 

 

 

 

 

 

 

 

 

 

 

 

 

 

 

 

 

 

 

 

 

 

 

다음날 아침일찌기 큰아버지를 모시고

엄마랑 울아빠의 유일한 아들 막내 태야랑 내남자랑..

영덕 고향엘 왔다.

아빠가 말씀하신 그 무덤자리를 확실하게 알아두기 위하여..

 

참 오랜만에 고향에 오신 엄마는 이 길을 기억해 내신다.

저 아래쪽에 우리 밭이 있었고.

저 위의 숲이 우거진 곳은 젊은날 엄마아빠께서

고생고생해서 개간하신 밭이 있었다고 한다.

 

 

나도 기억이 난다.

예전엔 산길이였던 저 길을 따라..

젊으신 울아빠가 지게를 메고 너댓살 어린 나는 아빠 손잡고 ..

아빠 밭일 가는데 쫄랑쫄랑 따라 나선던 길..

산위에서 맑은 물이 돌돌 흘러내려 저 산 아래 작은 옹달샘이 있었고..

아빠가 떡갈나무 너른 잎사귀 두 개를 따서

오목하게 만들어 내게 물을 퍼 주시던 기억..

아빠 밭일하시던 동안에 밭둑에 세워 둔 지게 사이에

내 작은 몸이 끼어 바둥거리던 기억..

지게 사이에 끼인 내몸을 아주 쉽게 꺼내주시던 아빠의 손길..미소..

기억이 난다.

 

 

 

 

 

 

 

 

 

 

 

 

 

 

 

환갑도 채우지 못하시고 일찍 돌아가신

너무나 착하기만 하셨던 큰어머니 무덤 앞..

산소 위에 하얀 개망초가 하얗게 피어 있고..

무덤 바로 앞엔 둥글레가 작은 군락을 이루러

동글동글 열매를 맺고 있어..

나는 큰어머니 무덤이 큰어머니 생전의 착한 품성만큼이나

참 푸근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빠가 그러셨다.

큰어머니 무덤에서 위로 쭈욱 올라가서 오른쪽 능선을 따라 가다보면..

그곳에 볕이 잘 드는 평평한 곳이 있다고..

 

아빠의 설명을 들을 땐 금방 찾을 수 있을 것 같았는데..

숲이 우거진 산속에서 우린 한참을 헤매야만 했다.

그래도 큰아버지 덕분에 아빠가 말씀하신 그 자리를 찾을 수 있었지만..

아빠가 차선으로 택하신 그 자린 습하고 멀어서 왠지 맘에 들지 않았다.

 

 

 

 

 

 

 

 

 

 

 

 

 

 

 

그래서 큰아버지께서 아빠가 원래 점찍어 두셨던 자리..

큰어머니 무덤 바로 아래저리를 추천해주셨다,

엄마도 나도 이 자리가 맘에 쏘옥 들었다.

도로에서도 가깝고 바로 앞으로 앞산의 봉우리가 바로 보이고

볕도 잘들고 포근해 보여서..

 

하지만 풍수하시는 분이 손위 형님보다 먼저 가시는 경우

그 바로 아래 자리는 쓰질 못한다고 하신다.

게다가 이 자리는 땅의 기운이 아빠랑 엄마의 기운에 맞지 않다고 하신다.

그래서 다음날 내남자랑 큰아버지는 다시 고향산엘 가셔서

풍수하시는 분과 온산을 다니면서 적절한 자리를 찾았다.

큰어머니 산소에서 10시 방향으로 조금만 더 올라 가면..

예전 큰집 밭이 있던 자리..

 

내남자가 처음자리보다 훨씬 좋다 하니..

불안해하시던 엄마도 그제야 맘을 놓으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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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아빠가 저번에 말씀하신 자리보다 더 좋은 자리..

 형수랑 형님자리에서도 가까운 자리..

 제일 좋은 자리에다 아빠랑 내자리 마련해놓았으니 이제 맘 놓으세요."

 

정신이 희미하신 가운데도 내내 무덤자리를 걱정하시더라는 울아빠..

엄마의 그 말에 그제야 맘이 놓이시는지 표정이 편안해지신다.

 

 

 

모처럼 컨디션이 좋아지신 아빠..

외출할 때 입는 옷으로 갈아입혀달라 하신다.

엄마는 평소 아빠가 제일 즐겨 입으셨던 파란 셔츠를 입혀 드린다.

늘상 앉아계시곤 하던 베란다의 쇼파에 앉아있고 싶다 하신다.

그렇게 그 날은 한참을 앉아계셨다.

엄마랑 눈도 맞추시고..

 

 

 

 

 

 

 

할매산소에 들러 절을 올렸다.

 

"할매..숙이 왔어요."

"할매..아빠 좀 지켜주세요."

 

할매산소 앞에서..자꾸 눈물이 흘렀다.

 

 

 

 

 

 

 

 

 

- 벗 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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