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서른 아홉살이였을 적..
내남자가 컴퓨터 용량이 다 차서 조만간에 컴이 멎을거라며 겁을 준다.
그래서 하루 시간 내어서 필요없는 파일들을 정리하는 중에..
<엄마의 비밀의 방>이란 파일을 발견했다.
인터넷도 블로그라는 것도 모르던 시절..
그냥 젊은 날처럼 일기를 쓰고 싶어 방을 하나 만들어 두고는 끄적였던 흔적..
그렇게 끄적이다가 애들 키우며 사노라..
그나마도 못하고 방치한 채로 잊어버렸는데..
10여년이 지난 지금..그 먼지 자욱한 방을 열어 본다.
2002년이면..
내 나이 서른 여섯..우나는 아홉 살..쏭이는 다섯 살..
애들 키우느라 정신 없었을 시절..
삶이 그저 나풀나풀 가비얍던 철없던 시절..의
흔적..
♥
2002.9.16. 월. 흐리고 바람.
나는 서늘한 가을날을 좋아했다.
들국화를 보며 눈물짓던 소녀는 이미 없지만
두 아이의 엄마로 살아가는 내가 있다.
어느덧 삼 십 중반에 서서 나를 바라본다.
후회도 미련도 없다. 그저 좀더 열심히 살 것을...
못 다한 친구들의 우정이 못내 아쉽다.
내 아이들과 내 가정의 울타리 안에서만 나는 나일 수가 있다.
늘 반복되는 일상에서 나름대로의 의미와 행복을 추구하지만
남들 눈에는 한없이 작아 보이겠지!
아침 산책, 내가 제일 좋아하고 제일 잘 할 수 있는 dance,
집안 일, 아이들 데리고 문화 센타 오가는 일,
이러한 일상들이 나의 전부이다.
겁쟁이고, 소심하고,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고,
소녀 적처럼 내 안에 갇혀서 나는 만족해 한다.
세상 밖으로 과감히 나가지 못하는 나를
나의 아이들이 나중에 어떻게 생각할까?
그것이 좀 두렵다.
아이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엄마로 살아가고 싶은 것이
나의 가장 큰 소망이다.
♥
2002.12.21. 금. 포근한 날.
2002년 12월 19일, 대통령 선거가 있는 날이었다.
나는 그 날 나의 소중한 권리를 행사하지 않았다.
내내 마음이 안 좋았다.
아이들에게 괜스레 부끄러웠다.
사람들이 누구를 찍었느냐는 물음에 나는 거짓으로 답했다.
눈치 빠른 우나는 왜 거짓말을 하느냐는 눈짓을 보냈다.
나의 딸들에게 부끄러웠다.
선거가 무엇인지를 몸으로 보여주고 싶었는데....
깨끗한 마음으로 정정당당하게 살아가야겠다.
우나가 방학을 했다.
오늘 처음으로 내가 하는 째즈댄스실에 데려갔다.
사람들은 우리 우나가 참 예쁘다고들 한다.
물론 우리 쏭이도 예쁘고 귀엽다.
커갈수록 사람들의 시선을 끌고 있다.
나는 나의 두 딸이 자랑스럽다.
물론 내가 잘못 가르친 부분도 많지만
그것은 엄마의 부족함이지 우나나 쏭이의 잘못은 아니니까!
째즈댄스실에서 우나랑 쏭이가 머리를 세게 부딪쳐서
많이들 울고 많이들 놀랬다.
쏭이 키보다 높은 뜀틀에서 뒤로 떨어지면서
딱딱한 바닥에 머리를 부딪친 것 같았다.
내가 직접 보지 못했지만 아이들의 상황은 장난이 아니었다.
쏭이가 자꾸 토할 것 같다고 해서 덜컥 겁이 났지만
한동안 지켜보기로 했다.
다행히 발레수업도 하고 음식도 잘 먹어서 한시름 놓긴 했지만
계속 지켜봐야 할 것 같다.
지금은 잘 놀다가 잘 자고 있다.
아이들의 안전사고는 정말 예측하지 못한 곳에서
한순간에 일어나기도 한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건망증일까?
나래엄마가 부탁한 일을 깜박해서 잠이 다 안 올 지경이다.
미안해 죽겠다. 영어 교재 복사도 아직 안 해놓고....
하루가 짧고 바쁘다.
♥
2002.12.22. 따뜻한 겨울
일요일, 남편은 모임이 있다고 외출 중..
예전 같으면 화날 일인데 이제는 잘 다녀오라고 한다.
내가 너그러워진 걸까?
아이들이랑 카드를 만들기로 했다.
사서 보내는 것 보다 간단하게나마 만들어 보는 것이
아이들에게 교육적 의미가 있을 것이다.
겸사해서 만들기 놀이도 하고 !
아이들은 나만큼 재미있어 하지 않는 것 같지만 열심히 만들었다.
스킬이라는 것을 사와서 만들었는데..
내가 초등하교 때 하던 것이 요즘 아이들 사이에서 유행이라니 ,
우나랑 쏭이는 힘들어하면서도 카드 만들기보다 더 재미있어 한다.
쏭이가 언니 보다 더 야무지게 잘 한다.
인터넷에서 게임(크레이지 아케이드: 한 두어달 이 게임에 미쳤었다.)을 하느라
세 번째 밤을 새우고 있다.
온 가족이 모여 앉아 게임을 한다.
남편은 내가 게임을 할 때 이길 수 있도록 옆에서 도와준다.
내가 지면 우나랑 둘이서 얼마나 속상해 하는지 !
더 열심히 연습해서 항상 이기는 엄마의 모습을 보여 줘야겠다.
호호호!!!
'Le Couple - Wishes'
- 벗 님 -
추억 속으로 빠져들면서 보너스 인생을 받은 것 같지요... ㅎ~
다행이 아무일 없었다는 이야기랑~~~
귀엽고 이쁜 아이들이군요.
어릴적
머리 다치면 걱정이 많이 되지요.
더구나 토할것 같다고 하면
뇌에 이상이 있는 건 아닌지하고 말입니다.
제가 워낙
어릴적 머릴 많이 다쳐봐서~~^&^
믿지 못하면 옳가 메시고~~ ㅋ
지금까지 제가 모임 있을 때, 늦은 시간까지 전화도 하지않아요.
자정넘어 걱정이 되면 얘들 시켜 전화하게 하는 것 같았습니다.
부부간에도 신뢰가 쌓여야지요. 괜한 소리 했나여? 용서하시길요~~
웃자고 한 얘깁니다. ㅋㅋㅋ
저두 전화 안하기로 유명한 걸요..
언젠가 거래처 사람들이랑 여럿이 출장을 간 적이 있었는데..
출장 내내 전화 한 번 안한 부인이 나밖에 없더라고..
은근 서운해 하던 걸요.ㅎ~~
아이들 키울 적엔..주말엔 아이들을 위해 무언가를 해줬음 하는..바람에서..
그렇게 바가지를 긁곤 했던 거 같아요.^^*
전화 한통 하지않은 것은 너무 했는데요. ㅋ
그래도 은근히 기다려지는데... ㅋ
내남자에 대한, 내여자에 대한 믿음이 강하니까 그런겁니다.
오늘 무척이나 추운데요.
따뜻함 끝에 오는 추위라 더욱 춥게 느껴집니다.
감기 조심하시고 즐건 주말맞으세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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