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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열일곱 이야기

푸른 곳으로

by 벗 님 2012. 10. 28.

 

 

1985년

 

 

 

 

8월 1일.

 

오늘은 너무도 헛되이 보내버렸다.

방금 하연이에게 다녀왔다. 후회할 줄 알면서도..

10시 37분..변해버린 듯한 연이 미웠었다.

그러나 가만 생각해보면 내가 나빴던 것 같다.

독어를 잡고 있는데 잘 안된다.

남은시간..

오늘 지나버린 나의 시간들을 후회하지 않을만큼..

앞으로의 나의 시간들을 알알이 엮어야겠다.

 

 

 

 

8월 3일

 

독어 부정대명사/ 접속사 ..

새벽운동..체력장 준비..

 

최선을 다해야지..노력! 노력! 인내!!!

수많은 난관을 극복해야한다.

꼭 해내야만 한다.

 

 

 

 

 

 

 

 

 

8월 10일

 

아무 쓸모없이 많은 시간을 보내버렸다.

정말 아무런 생각없이..

이래선 안되는데..

방황하지 말아야 한다. 어제처럼..

내가 지금 무엇땜에 이러는지..

조금은 자신만만하게..자만하지 말고 현실과 싸워야지.

늦었다고는 생각지 말자!

끝까지 최선을 다하자!

운명의 그 날..그날을 생각하자!

 

그리고 나의 사랑하는 사람들을 생각하자!

엄마, 아빠, 홍랑..사랑스런 내 동생들..

정애, 상숙이, 미정이, 마니또, 경숙이..

연이, 정화, 명희. 경이. 이경이.. 철규, 광우. 영민..

 

 

 

 

 

 

 

 

 

8월 22일

 

엄마, 요즘따라 왜이리 서러운지..

엄마, 난 어쩌면 좋아..

나땜에 너무너무 고생하시는 엄마, 아빠를 생각할 때마다..

이래선 안된다고 나를 채찍하지만 내 앞에 주어진 생은 왜 이리 고달픈지..

 

자꾸만 자꾸만 미워지는 이 현실을..

외면할 수도..그렇다고 그 현실 속으로 흡수되지도 못하면서 나는..

외로운 아이가 되어가고 있다.

 

서글픈 우리..나..

별들도 하나 둘씩 빛을 잃어가고 있다.

그처럼 영롱하던 밤하늘을 누가 다 앗아버렸는지..

증오스런 검은 하늘..별빛마저 잠이 든 오늘 밤..하늘..

 

분개하던 나의 오빠는 그래서 뛰쳐나왔나 봅니다.

그처럼 낭만일 것만 같던 대학이란 곳이..왜?

나의 오빠에겐 분노와 증오의 빛을 발산하게 했는지 모르겠습니다.

나의 오빠는 군대도 마다하고 지금 도망자 신세입니다.

 

 

 

 

★ 나의 오빠

 

    나랑 두 살 터울의 외사촌 오빠는 계집아이 같이 예쁘장하고 몹시 내성적이지만 공부는 아주 잘 하던 모범생이였습니다.

    S대를 목표로 열공했지만 몸이 아파 고3 시절.. 안타깝게도 거의 절반을 병원에서 지내야 했습니다.

    그래도 국내 다섯 손가락에 드는 대학에 들어갔습니다.

    하지만 1년만에 자퇴를 했습니다.듣기로는 과가 마음에 안든다고..

    재수해서 다시 원하는 학교 원하는 과에 들어갔지만..학생운동에 연루되어 군대도 가지 못하고 도망자 신세가 되었습니다.

    1년? 2년? 그렇게 도망자 생활을 하다..결국 자수를 하고  곧바로 끌려가듯 군대에 들어갔습니다.

    군에 간지 6개월도 채 되지 못해서 의가사제대?인가를 했습니다.

    오랜만에 만난 오빠는 사람을 알아보고 일상적인 대화는 가능했지만 ..정신이 온전치 못했습니다.

    들리는 말로는 군에 가서 하도 맞아서 그리 되었다고 했습니다.

   

    어린시절 하얀 눈이 펄펄~~날리면 눈싸움 하자고 10리도 더 되는 길을 달려와 내 방 창문을 두드리던 오빠..

    여고 졸업식날..카메라를 메고 와서 내가 상 받는 장면을 찍어주다가 엉덩방아를 찧고 쑥스러워하던 오빠..

    도망 다닐 때..가끔 내게 전화를 걸어와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전활 놓을 줄 모르던 오빠..오빠..

 

 

   

 

 

 

 

선생님..

방학도 이제 끝나가려 하고 제 마음은 아직도 방황하고 있습니다.

이제껏 지내온 지난 하루들을 후회하지도 않습니다.

단지 서러울 따름입니다.

 

왜 우린 이토록 고뇌하며 살아야 하는지요..

사람들은 이 현실을 정당화 하고 자신을 현실 속에 합리화 시키려고 합니다.

자의가 아닌 타의로서 ..우린 보이지 않는 사슬에 얽메여 있습니다.

그렇게 살아야하는 것이 우리 생이라면..

전 차라리 어디로든 가버리고 싶습니다.

 

내게 날개가 있었더라면..난 벌써 날아갔을 겁니다.

 

푸른 곳으로..

 

푸른 친구들과 함께..

 

푸른 이상을 간직한 나의..

 

푸른 꿈과 함께..

 

 

 

아~ 그러나 나는 지금 독서실에 앉아 영어문법과 시름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나의 현실입니다.

이것이 나의 현재입니다.

이것이..나..나의 모습입니다.

 

 

 

 

 

♬~~

 

숨어 우는 바람소리 / 이정옥

 

 

- 열일곱 벗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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