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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나의 이야기

퍼머에 관한 나의 보고서

by 벗 님 2012. 10. 4.

 

 

 

 

 

 

내가 태어나 처음으로 파마를 한 것이 ..여덟살..

울엄마는 긴머릴 참 좋아하셨다.

그래서 어려서 부터 나는 항상 허리츰까지 오는

찰랑찰랑 긴 머릴 고수했었던 걸로 기억한다.

 

어느날 서울 사는 멋쟁이 이모가 우리집에 놀러 오셨다.

이모는..울이모는..

어릴적 내 그리움이였고 보고픔이였고 사랑이였었다.

오매불망 이모가 오기만을 기다리고 기다리던 ..유년..

 

이모의 빨간 미니스커트는 아직도 기억에 선연하다.

이모랑 나가면 동네 총각들이 휘파람을 휘휘~불던 기억도 난다.

내게 울이모는 서울멋쟁이였고 텔레비전에 나오는 여느 여자 탤런트보다 이뻤었다.

모처럼 울집에 놀러온 이모는 날 데리고 동네 미장원엘 갔다.

 

그리고 내 긴 머릴 싹뚝 짧은 커트머리로 잘라 뽀글뽀글 퍼머를 해주셨다.

일하고 늦게 집에 돌아오신 엄마가 내 짧은 뽀글머릴 보구

기암을 하시며 아까워하시던 기억도 어렴풋이 난다.

 

 

 

그후로 펌을 한 기억은 없다.

다시 머릴 길게 길렀고 중학교 가면서 단발머리로 잘랐지만..

체조선수로 활동하던 당시..

단발머리가 운동하는데 거추장스럽다는 이유로 우리 체조부들은

머릴 길러도 무방하다는 특혜를 받았었다.

그래서 우리 체조부랑 무용부는

그 당시로서는 아주 파격적으로 머릴 기를 수가 있었다.

 

그러나 중학생이 머릴 기르고 다니는 것을

그 당시엔 문제아이거나 퇴학생쯤으로 바라보는 시절이였기에..

난 단발머리의 평범한 친구들이 무척 부러웠었다,

물론 그 아이들은 외려 우릴 부러워했었지만..

 

 

여고시절이 되면서..

일제잔재에서 벗어나자는 의미로 두발과 복장 자율화가 실시되었다.

그 후로 쭈욱 길러온 머리..

 

 

 

 

 

 

 

 

대학 4년 내내..고집스레 긴 머릴 고수했고 생머릴 고집했었다.

가끔 엄마가 집에서 고데기랑 펌약으로 웨이브를 넣어주시곤 하셨고..

내 머리손질은 엄마가 다 해주셨기 때문에 미장원에 갈 일은 거의 없었다.

 

그러다가 대학 4학년..졸업식이 있기 바로 전날..

난 4년 내내 고수하던 긴 머릴 싹뚝..짧은 커트머리로의 변신을 했다.

 

졸업식날..

울산에서 올라오신 부모님을 학교 앞에서 기다리는데..

차에서 내리신 엄마가 나랑 눈이 마주치고도 그냥 지나쳐가시는 게 아닌가..

엄마..하고 부르니..

그제서야 깜짝 놀라며 머릴 왜 그렇게 잘랐냐며..못알아 봤다고..

그렇게 아까워하시던 엄마에 반해..

내남잔 지금도 가끔 얘길하는데..

그날 짧은 커트머리가 지금껏 가장 이뻤었다고..

살면서 자주자주  나더러 다시 그 커트머리 해보라고..

강요하곤 했었다.

 

그러나 나는 살며..

내남자의 그 요구를 단 한번도 들어주지 않았다.

여전히 긴머릴 선호 했고 생머릴 고집했었다.

 

 

 

그러다가 불혹을 코앞에 둔 서른 아홉에 스트레이트를 하러 미장원엘 갔는데..

젊은 남자원장이 하는 말이

여자분들 나이에 맞지 않게 생머리 고집하는 거 자긴 별루라고..

나에게 나이에 맞게 분위기 있는 웨이브 펌을 해보라고..

그때서야 깨달았다.

소녀처럼 긴 생머릴 찰랑찰랑 거리며 다니는 거..

더 이상 어울리지 않는 나이가 되었다는 것을..

 

 

그 이후..지금처럼 굵은 웨이브를 넣어 물결처럼 흘러내리는 듯한 머릴 줄곧 해 왔다.

머리 감고 달리 손질도 필요 없고 그냥 느낌도 좋아서..

이제는 이 머릴 고수하고 있는 중이다.

 

그러나..점점..

이 긴 웨이브머리도 어울리지 않는 나이가 되어가고 있는 듯 하다.

이번에 미장원언니가 애들처럼  

앞 머릴 동그랗고 짧게 잘라서 안그래도 맘에 안들었는데..

 

쏭이 왈..

 

" 엄마, 나이 든 아줌마가 어려보일라고 용쓰는 것 같애.."

 

"지지배~~$$%%^&&~~"

 

 

 

 

 

 

 

 

 

진탁씨에게서 전화가 왔다.

대학 졸업하고 첫 연락이니..근 20여년만에..

 

진탁씬 우리과에 수석으로 들어와서 교내 아르바이트를 하면서도

장학금을 놓치지 않던 동기였었다. (참고로 난 차석..ㅎ~)

오래 고시공부를 했었다고 한다.

늦은 결혼을 했고 아이는 없다고..

강화도에 살고 있는데 이번 주말에 고구마 캐니..

와서 맘껏 캐가라고..얼굴 한 번 보자고..

 

이 글을 쓰는 중에 진탁씨 전화를 받아서 퍼머얘기 하다말고 삼천포로 가버렸다,.

 

간만에 대학시절 친구의 목소릴 들으니..다시 그 시절로 돌아간 듯..

내 목소리에서 마음 안에서 스무살의 풋풋한 생기가 느껴진다.

 

긴 머리 나풀거리며 캠퍼스 타박타박 걸어가노라면..

더러 뒤따라와 말걸던 남정네들도 있었던.. 그때 그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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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벗 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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