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8
작년 여름.. 엄마랑 30여년 만에 찾아간 유년의 뜰..
대문 앞 저 번지수는 그 시절 그대로 남아 있었다.
여섯 살 되던 해에 내 고향 영덕을 등지고 울산으로 이사를 왔다.
내가 여섯 살을 기억하는 이유는..
햇살이 반짝이는 고향집 툇마루에 아빠가 앉아 계셨고..
채 여섯살이 되지 못한 자그마한 계집아이던 내가
아빠의 무릎에 얼굴을 묻으며..
"아빠 , 우리 언제 이사가요?"
"응, 우리 숙이가 여섯 살 되면.."
그날의 그 순간의 그 풍경이 나는 어제인 듯 또렷하다.
잠이 덜 깬 채로 버스에서 내려 울산 땅을 처음 밟던 멀미로 어질하던 순간..
아빠랑 트럭 앞자리에 앉아 우리가 살게 될 마을입구 나무다리에서 내리던 순간..
얼기설기하던 나무다리가 무서워 아빠 등에 엎혀 건너던 순간..
파노라마처럼 이어지지는 않지만 조각조각으로 기워진 기억들..
여섯살 계집아이의 기억에 아로새겨져
사십 년이 되도록 남아 있는 그날의 아름다운 잔상들..
♥
우리집은 마당이 넓고 깊었다.
우리집을 빙 둘러 사방으로 작은 개울물이 흐르고 있었다.
그러기도 쉽지 않았을텐데..
우리집 뒤안으로..옆으로..앞으로..대문 앞 길가 옆으로도..
돌돌돌~~작고 맑은 개울물이 흘렀다.
그 개울가에서 쑥을 으깨어 돌돌 말아 무명실 끝에 동그랗게 매어..
개구리 낚시하던 기억이 난다.
나는 제법 개구리를 잘 낚았던 것 같다. 그 손맛이란..ㅎ~
어느해 겨울..
아빠는 스케이트를 만드는 중이셨는데 미완의 그 스케이트엔 손잡이? 가 아직 없었을 때..
마침 뒤안의 작은 개울이 꽁꽁 얼어..나는 동생들과 얼음을 지치다 그 스케이트가 타고 싶어..
나는 스케이트에 올라타고 세째 월이더러 내 손을 잡아 끌게 했는데..
내 손을 잡고 끌던 월이가 고대로 빙판에 미끄러지며 턱을 얼음에 찧고..
자지러질 듯 우는 월이의 턱 아래에선 피가 뚝뚝..
나는 비명을 지르며 엄말 불렀고..
그렇게 수건으로 얼굴을 칭칭 동여매고 멀리 시내 병원까지 다녀온 월이는
턱 아래를 세 바늘이나 꿰메고..
안방의 작은 창으로 뒤안을 바라보는 것을 좋아했던 난..
뒤안에 이런저런 풀꽃이 피고지는 것을 아침저녁으로 바라보는 것을 좋아했다.
아침마다 창을 열고 연분홍 나팔꽃이 피어나는 것을 참 경이롭게 바라보곤 했었던 기억..
엄마는 늘 말씀을 하셨다.
지나가던 어느 노파가 이 집이 풍수적으로 더할 바 없이 좋으니..
이사갈 생각일랑 하지 말랬다고..
우리집은 길가 쪽에만 담장이 있었고 다른 쪽엔 개울이 흘러 담장이 아예 없었다.
대문도 없어..우리집 너른 마당은 동네 아이들의 놀이터가 되기 일쑤였다.
나는 누가 시키지 않아도 기다란 싸리비로 마당쓸기를 좋아했다.
흙먼지 하나 없이 말끔하게 마당을 쓸고 나면..왜 그리 기분이 좋던지..
그 마당에서 동네친구들이랑
공기놀이..고무줄 놀이..공놀이..비석치기..구슬치기.. 땅따먹기..줄넘기.. 훌라후프..
때마다 계절마다 놀이 종류를 바꿔가며 놀았던 기억..
길가 담장 아래에서 옹기종기 모여 소꿉놀이 하던 기억..
마당 한가운데에 기다란 빨랫줄이 있었는데 내가 빨래를 널거나 걷던 기억은 없고..
빨랫줄에 나란히 앉은 잠자리를 잡기 위해..
일단 기다란 싸리비로 빨랫줄을 세차게 내리쳐..
순간적으로 충격을 받은 잠자리 몇 마리가 기절해서 마당으로 떨어지면
얼른 싸리비로 덮어 잡아채던..
그렇게 잠자리 잡아 손가락 마디마다 끼우고..꽁지 따서 시집 장가도 보내주고..
그렇게 노닐다가 잠자리 날개가 너덜너덜해지면 그때서야 날려보내 주면..
거의 비실비실 제대로 날지도 못하던 불쌍한 잠자리들..
내가 중 1때..아빠가 새로 지은신 내 유년의 집..30년이 지났는데도 그 시절..그대로..그자리에 머물러 있었다
마당을 반틈 갈라 엄마는 텃밭을 일구셨는데..
여름이면 엄마랑 옥수수를 따던 기억..
밭 가장자리마다엔 호박넝쿨이 무성하게 자랐고..
노란 호박꽃이 피면 이뻐서 똑똑 따서 소꿉놀이 하던 기억..
어느날엔가 그 호박꽃 앞에 쪼그리고 앉았는데..
새댁이던 문간방 뚱뚱이 아줌마 남편이던 빼빼 마르고 얼굴이 유난히 하얀 옆방 아저씨가
등 뒤에서 내 맨어깨를 손으로 감싸는데 어린 마음에도 끈적하고 불쾌했었던 기억..
비가 내리는 날의 텃밭의 싱그러움은 지금도 연상될 정도다.
마당의 반이 초록으로 푸릇푸릇하던 내 유년의 뜨락..
마당 제일 모퉁이에 푸세식 변소가 있었고..
예닐곱살의 나는 그 냄새나는 변소에서 문을 반틈 열어놓고 볼일을 보며..
바로 눈 앞에 펼쳐진 빗방울이 팅기는 초록 무성한 텃밭을 바라보는 것을 좋아했다.
왠지 모를 아늑함과 평화를 .. 훗~참 별난..
비가 몹시도 내리던 여름날이면..
우리집 마당은 작은 풀장이 되곤 했었다.
뒷동네 플라스틱 바가지며 고무다라이며 아이들 공이며 ..
우리집 마당에 둥둥 떠다니곤 했었던 기억..
엄마가 나를 고무다리이에 동동 태워주시던 재미난 기억..
비가 오면 처마 밑에 쪼그리고 앉아..
오들오들 떨면서도 그렇게 하염없이 비를 바라보기를 좋아했었던 유년의 나..
열 살 이후의 유년의 뜰에 대한 기억이 거의 없는 것은..
체조선수로 늘 합숙을 한다고 객지로 떠돌아 다녀..
더 이상의 기억..아름다울 추억을 만들지 못했기 때문..
내가 열 세 살이 되던 해..
그 기와집을 허물고 그 자리에 아빠는 직접 동네에서 몇 채 안 되던 양옥집을 지으셨다.
엄마가 늘상 두 번씩은 걸레질하라고 시키시던 툇마루 대신에 널다란 나무목 거실이 지어졌고..
입식부엌도 생기고 마당의 수돗가 대신 타이루 욕조가 있는 욕실도 생겨나고..
테라스도 생겨 화분도 줄줄이 놓아 둘 수 있었지만..
대신..그 넓던 내 유년의 마당은 완전 축소판이 되어..
그냥 담장 아래의 작은 화단으로만 남게 되었다.
옥수수도..호박넝쿨도 ..심을 수 없는..
그래서 엄만..옥상에다 몇날을 흙을 퍼다 올리셔서 작은 텃밭을 가꾸셨다.
저 대문 위로도 엄마가 좋아하시던 국화꽃을 한가득 심으셨고..
아? 그러고 보니 화단에다 호박도 심으셨던가 보다.
.저 담장 위로 호박넝쿨이 뻗어 드리워지고..
커다란 누런 호박이 매달려 있던 기억이 새록하게 떠오르는 걸 보니..
내 놀던 옛동산..
그 무덤자리는 남아 있건만..
풀은 그 때의 그 풀들일까..
왜 이리 더 가난해졌을까..여긴..
아..추억이여..유년이여..
나 ..그 시절로 돌아가 내 인생의 밑그림을 다시 그리고 시퍼라..
태어나 처음으로..나는 돌아가고 싶다. 지금의 내가 아닌 시절로..
- 벗 님 -
울산 어디쯤일까?
어릴적 놀이
기억의 터에서 공유합니다
복산동,,송골새라고들 했었는데..
조금 외진 곳이였어요,
그래서인지..어쩜~~
30여년이 지났는데도..고대로 보존? 되어 있던..
저야..옛기억을 고스란히 더듬을 수 있어 좋았지만..
너무나 초라이 낡아가고 스러져가고 있었어요.
옛가난을 고대로 되물림하면서..
지금도 좋지만 많은 경험과 숙성됨 인생의 고귀함도 알고
다다님이 울산에 계시는데 보고싶네..^^
타임머신이 발명된다면..
정말 어릴적의 나로 돌아가보고 싶어요.
무엇보다 젊었을 엄마아빠 모습이 뵙고 싶어요.
예쁘장한 계집아이던 내 모습도 보구 싶구요.ㅎ~
후훗~~
dada님 어찌 생기셨는지..저두 함 뵙구 싶네요..ㅎ~
그것도 엄마랑... ㅎ~
저도 벗님 어린 시절과 비슷한 삶을 살았습니다.
단, 훌라후프는 없었어요.(세대차이 ^^)
발전 없이 더 가난해진 동네라 해도 벗님에게는 행복이지요.
어릴 적 추억을 고스란히 떠 올릴 수 있으니까요.
애잔한 느낌이 들 수록 어릴 적 추억에 대한 감정은 더 깊어집니다.
부러워요..........벗님.......!
다시돌아가고싶다...누구나 간절함이겠죠...
오늘 낮에 우연히..본글귀가...
생각납니다..
절대 죽지 않을 것 처럼 이 세상을 살고...
내일 죽을 것 처럼 저 세상을 위해살아라.... ^^;;;
벗님의...현재의 모습은..아마도...어린 유년시절의...그 감성인가봅니다....ㅎㅎ
너무나 아름다운..그..감성...^^;;;
후훗~~
아무래도 어릴적 부터 감성인지..청승인지..
그런 게 보통 애들 보다는 발달을 했었던 가 봐요.
어릴적 부터 비가 그렇게 좋았으니..
그리고 혼자 있는 시간들이 좋았으니..ㅎ~
순간순간 ..최선을 다해 살아란 말이겠죠..
감성이 아름답다 해주시니..감싸~~^^*
벗님 유년시절의 뜰...
참 곱기도 해라~
아 그렇네요...
나이가 들수록...
어린날의 잊을수 없는 추억이라면...
정겨움과 소박함...
부푼 꿈과 희망속에서 나래를 폈던것 같아요..^^
참으로 감성이 고우신 벗님!~
주마등처럼 스치우며...
엄마와 함께한 여행에서...
어린날의 추억이 더 애절함으로 다가 왔나봅니다.^^
아유~ 현재 벗님의 삶...
인생의 밑그림을 잘 그리셔서~ 소녀적~ 어린날 못지않은...
사랑스런 가족들과... 행복으로 잘 꾸려가고 계십니다.^^
고운미소... 늘~ 사랑스럽게요~ 고우신 벗님!~~^^*
제가꿈꾸던 건데...벗님은 추억이네요
그때 사진인가봅니다
인생의밑그림을 다시그린다면 저는 어느한부분만을 지워버리고 싶네요
오늘하루도 좋은시간 되세요
일곱살쯤의 일들을 세밀히 기억하시니 놀랍네요..
전 그때쯤의 기억은 아주 단편적이라서 몇년을 훌쩍 뛰어넘습니다
가끔 이리오면 읽을거리가 많아서 좋군요..게으름피우는 저와는 달리
벗님의 생각은 넓고도 깊습니다..
나쁜 의미가 아니라 좋은 의미로요..
오늘도 즐겁고 유쾌한 날 되세요 벗님~^^
진정한 여유인것 같이 느껴지는군요
언제든 나를 잠시라도 머물게 할수있는 .....
좋은마음과 글 잘 보고갑니다!!!
잠자리 꼬랑지 떼어내고 시집장가도 보내공~ㅎㅎㅎ
결국 그 잠자리들 다 죽었을것이고~ㅎㅎㅎ
개구리도 많이 잡았다고 손맛을 안다고?ㅎㅎㅎ
참 오늘 커리 꼭 해먹어라~~~
커리할때 토마토 열십자로 칼집내고 뜨건물에 살짝 데친다음 껍질 벗기고 갈아넣어도 좋고 아니면 다져넣어도 좋다~~
인도에 있을때 커리요리하면 항상 토마토 들어간다~양파도 다져넣고~~~
후훗~~
어릴적 골목대장이였담..믿겠니?
또래 남자애들 줄 쫘악 세워두고 ..군기도 잡고..ㅎㅎ
타잔놀이..전쟁놀이도 ..즐겼던..
개구리 뒷다리도 연탄불에 구워먹었는 걸..
메뚜기 쇠젓가락에 줄줄이 끼워 구워먹기도 했고..
사실..지금은 그러라면..꺄악~~소릴 지르겠지..ㅎ~
참..오늘 점심..저녁..다 커리로..
넘 맛있어서 과식한 거 가터..ㅎ~
친구 조언대로 저녁엔 토마토 넣어서 먹었더니..
더 맛나더라..
맛난 팁 ..알려줘서 고마버..ㅎㅎ~~
남에게 무엇을 베풀었을 때는 비록 그것이 자발적인 행위였다
하더라도 유형무영의 보은을 은근히 바라게 마련입니다.
한편 내가 받은 은혜는 까맣게 잊고 또 어쩌다가 원망을 듣게 되면
그것은 좀처럼 잊지 못하는 것이 또한 인지상정 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신이 은혜를 입은 사람ㅇ에게 보은을 했는지
반성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나는 보은을 안하면서 남에게 베푼 것을
마음에 새겨 두고는 보은하기를 바란다면.그것이야말로 자기 모순속에서
살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모처럼에 단비가 내려 대지를 촉촉히 젹셔준
수요일 하루가 서서히 저물러 가고있습니다. 즐거운 저녁시간이 되시길요
6월에 마지막 수요일 저녁 잠시 다녀갑니다. 감사합니다
♧ )) ♧
┃ ((* ┣┓ 여기 향기고운 헤이즐넛 커피 놓고 갑니다*^^*
┃ ((* ┣┓
┃* ♠ ┣┛ 2012.6..27. 비와찻잔사이 올림
┗━━┛
울산은 전국에서 GNP가 제일 높다지요. 4만$
부모님께서 선견지명이 있으셨습니다.
노래따라 고향생각 물씬 풍깁니다.
지금 고향의 옛추억들을 그리는 중...
우리가 이사 올 무렵..
한창 공업도시로 위상을 떨치던 시기였지 싶어요.
먹고 살기위해..객지에서들 울산으로 참 많이들 오셨을 즈음..
울아빠가 먼저 자릴 잡으시고..
고향에 계시던 큰댁..작은 댁..다들 울산으로..ㅎ~
전엔 공해로 찌든 도시라는 불명예도 있었지만..
지금은 참 푸르고 아름다운 도시가 되었어요.
고향이 어디셨지요?? ^^*
지금은 서해안고속도로가 뚫려서 좀 알려졌지만요.
한산 모시가 유명한 고장이며
비인, 춘장대 해수욕장과 동백정이 좀 이름이 있고요.
가까이 바닷길이 열리는 무창포, 그 위로 유명한 대천해수욕장이 있습니다.
충청도 양반? 이시군요..ㅎ~
전 충청도 분에 대한 선입견이 있어요.
점잖고 온유하신 성품이라는..ㅎ~
서천..
참 아름다운 곳일 듯 합니다.^^*
턱 괴고 앉아 들었습니다
하필이면 이런 시린 글을 읽고 있는 지금 밖에는 촉촉하게 비가 내리고 있어요
벗님이를 따라 앤 언니의 유년의 뜨락도 함께 걸어봅니다
우린 이제 유년의 뜨락으로 돌아갈 수 없으며 단지 추억하고 살아야 하는
얼마나 많은 기억의 편린을 찾아 낼 수 있을지
더 많은 기억속의 수채화를 토해냈으면 ... 이사 가던 날의 작은 아이 벗님이가
낯선 마을로 간 이야기소설가 이 문열의 '변경'을 읽는듯합니다.
저도 오늘 무료해 사진하나 올렸는데 같은 대문 사진이라니
생각이 통할 때도 있네요.
벗님의 글을 통해 유년의 기억 정말 생생하게 살아나네요.
아름다운 시절 , 다시 가고 싶습니다. 먼지나는 신작로길, 오디 따 먹고 입에 잉크 바른 것 같던 모습 그립습니다
고맙습니다
저와 닮은 유년의 기억속을 걷는 이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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