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9
동구 밖 굴다리..
유년의 뜰과 함께 떠오르는 사람들..
우리집은 기와집이였고..큰 방 ..작은 방..부엌..
그리고 길가쪽으로는 세를 놓기 위한
방 하나에 부엌이 딸린 방이 두 개 있었다.
♥
30여년이 넘은 장미 아파트..
저 아파트 지을 때 엄마는 건장한 남자들도 힘들다는 목수시다를 하셨다고 한다. 발에 못을 여러군데 찔려 고생고생을 하시면서..
애야네..
제일 먼저 떠오르는 셋방사람은 애야네..
애야는 나보다 한 살 어렸고 나보다 두 세살 많은 언니랑 오빠가 있었다.
애야네 엄마나 아빠의 얼굴은 가물거린다.
다들 어려운 형편에 맞벌이들을 하고 있었으니..
그러나 옆방에 부스럭거리는 소리도 다 들리는 고요한 밤..
천장엔 쥐들이 다다닥~~뛰어다니거나 ..
사각사각~`무언가를 갉아대는 소리가 들리곤 하던 밤..
애야네 엄마 아빠는 고성을 내며 자주 부부싸움을 했었다.
그런 밤이면 나는 잠자리에 숨죽이고 누워 애야를 걱정하곤 했었고..
얼굴도 기억나지 않는 애야아빠는 늘 무서운 사람으로만 각인되어 있었다.
한날은
나보다 두 살쯤 많은 애야네 오빠가
수돗가에서 운동화를 빠는 걸 옆에서 쪼그리고 지켜보는데..
어쩜 그렇게 운동화를 바닥까지 빡빡 문질러 새하얗게 빠는지..
눈이 부실 지경이였다.
그후로 나는 운동화를 빨 때면 늘 그 수돗가 풍경이 떠올랐고..
그 오빠처럼 운동화를 새하얗게 빨고 싶어 무지 빡빡 문지르곤 했었다.
얼마후..우리집 셋방에 살던 애야네는 ..
마을 앞 공터에 우리 지역에선 최초의 아파트인 장미아파트가 들어셨을 때..
그 아파트로 입주했고..
나는 그 당시 아파트에 사는 애야가 무척 부러웠었다.
윗동네 올라가는 길..
정월대보름날 동네친구들이랑 바가지 들고 찰밥 얻으러 이 길을 오르던 생각이 난다.
그후..
작년 쯤엔가..
엄마가 산행길에 동행한 사람들과 산정에서 점심을 먹으면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는데..
처음 만난 어떤 아주머니가 예전에 복산동 살았는데..
그때 주인집이 딸부잣집이였는데..하면서..
막 그 딸부잣집에 대한 칭찬을 늘어 놓으시더란다.
가만히 듣고 있던 엄마가 복산동도 그렇고..
딸부잣집도 그렇고..딱 우리집 얘기같았는데..
마침 홍랑이엄마가 어떻고 하면서 우리 동생 이름이 나오더란다.
그때서야..
"아고~~아이고~~내가 그때 그 홍랑이 엄마 아이가.."
그렇게 엄마는 산행 중에 애야네 엄마랑
근 30여년만에 극적인 해후를 하셨다고 한다.
참 인연이란 기가 막히게 이어지기도 하지..
어찌 여럿이 같이 간 산행 동행인들 중에..그 애야 엄마가 있었고..
하필 그 자리에서 수십년된 옛이야기가 나오고..
하필 우리집 이야기가 나왔는지..
엄마는 내게 그 이야기를 들려주시면서..연거푸
"참 희안하제..희안해.."하시며 경이로워 하셨다.
내 짝꿍 미희네 집..
은숙이 언니네..
그리고 너무나 착했던 은숙이 언니네..
구습이 오빠랑 나보다 한 살 어린 현정이 그리고 어린 남동생이 있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정확하진 않다.
나보다 한 살 많은 은숙이 언니는 맞벌이 하시는 부모님을 대신해서
늘 집안일이며 빨래..부엌일을 하느라 우리랑 놀 틈이 없이 바빴고..
반면 현정이 요것은 어찌나 빨빨거리며 돌아댕기는지 ..
은숙이 언닐 도와주기는 커녕 손끝도 까딱않고..
지 언닐 외려 부려먹곤 하던 얌체같은 계집애였다.
나보다 서너살 많던 구습이 오빠는 키가 아주 커서 같이 학교 갈 때면..
오빠가 성큼 한 발짝 떼면 우리는 두 세 발짝 종종 걸음으로 쫓아가야만 했다.
은숙이 언니가 집안일을 조금이라도 소홀히 해놓으면 아주 따끔하게 혼내키곤 해서..
은숙이 언니도 천방지축 현정이도 구습이 오빠 앞에선 쩔쩔매기 일쑤였다.
오빠도 국민학교 5, 6학년 정도 밖에 안되었을 때인데..
우리 눈엔 왜 그리 크고 근엄한 어른같아 보이든지..
엄마는 은숙이 언니네 아줌마를 얼마전 길에서 우연히 만났는데..
구습이 오빠는 울산에서 변호사인가..회계사인가..
여튼 아주 성공해서 잘 살고 있다고..
내 안부를 묻기에 서울쪽으로 시집 가서 잘 살고 있다고..
650~18번지..우리집 나무대문..
아빠가 지은신 고대로 여직 남아..
진우 오빠..
그리고 옆방 살던 진우 오빠는 아직도 생각이 난다. 보고싶고..
월남전 다녀왔다던 나이차가 많이 나는 형이랑 단 둘이 살던..
진우오빠는 그 형을 무척 어려워했고 무서워했었던 걸로 기억한다.
진우오빠와의 추억은 아주 어려..남은 게 거의 없지만..
멀리로 이사 간 후에도 문득 문득 우리집을 찾아와
마당에 수줍게 서있던 오빠가 생각난다.
"쟈가 얼마나 그리우면 그 먼곳에서 여그가 어데라고..쯧쯧~~"하시던 엄마..
유년의 그리움으로 오래 남아..
지금도 진우 오빠의 까무잡잡하던 얼굴.. 큰 키..
그리고 늘 잔잔하고 깊어보이던 표정..까지
다 기억이 난다.
옛 제일중학교 옆 골목길..
매일 학교 가던 길..
고모..
그리고 내가 고모라고 불렀었는데..그 고모 이름이 생각이 나지 않는다.
분명 무슨무슨 고모..하고 앞에 이름을 불렀었는데..
동생들이 꼬물꼬물 태어나고..
엄마는 반찬값이라도 보탤 요량으로 동생들이랑 내가 쓰던 작은방까지 세를 놓으셨다.
그 작은 방에 세들어 살아 우리랑 부엌도 같이 쓰던 ..고모..
직장에 다니던 아가씨였는데 피부가 하얗고 날씬하고 예뻤었는데..
하얀 얼굴에 발긋발긋 여드름이 있었던 게 흠이라면 흠..
나를 유난히 예뻐해서 퇴근해오면 씻고 난 뒤에..벽장 너머에서 내 이름을 불렀다.
숙아, 고모랑 같이 자자..하면서..
그러면 나는 쪼르르 분냄새 나고 화사하던 고모네 방으로 가서 폭신하게 고모랑 잠들곤 했었다.
어느 겨울 저녁..고모는 호빵을 사 와서 찌고 있다고 같이 먹자고 했다.
얼마나 고대하고 기다렸는지..그 당시엔 그 호빵 마저도 귀하디 귀한 간식이였기에..
그런데..호빵이 따끈히 데워지는 그 몇 분을 못 견디고..스르르~~잠이 들어버린 나..
아침에 일어나 얼마나 원통하고 분하던지..어찌 고단새 잠이들어 버려서..
그 날 저녁 먹지 못한 호빵 생각이 그후로 몇년 동안은 생각이 났던 거 같다.ㅎ~
어느날 ..그 고모는 직장이 가까운 시내 쪽으로 이사를 가게 되었고..
리어카에 바리바리 짐을 싣고 가는 고모를 배웅한다고 엄마는 동생을 업고..
그렇게 줄줄이 따라나선 길,,
조금만..조금만..하며 따라나선 배웅길이..
복산학교 지나고..울산 학교 지나고 경찰서 지나고..양사동까지..
지금 버스로 가도 30분은 족히 걸릴 거리..
그렇게 고모가 이사갈 집까지 결국 다 가서야..짐 내려주고 빠이빠이~~했던..
그 시절..그땐..그렇게 정에 울고 정에 웃고..
그렇게 서로가 살붙이 같이 정답던 시절이였다.
자립원 올라가는 길..
그 시절보다 더 낡아버린..
자립원 아저씨..
그 고모가 이사 나가고 난 후에..
윗동네 자립원 살던 30대 초반 쯤의 아저씨가 독립을 해서 그 방으로 들어오게 되었다.
나는 왠지 그 아저씨가 무섭고 두렵기만 했었다.
자립원에 대한 선입견이 어린 마음에도 자리하고 있었던겐지..
그러나 좋았던 것은 그 아저씨는 자주자주..
나와 어린 동생들을 위해서 과자같은 것을 사주시곤 했는데..
한 번 사주시면..거의 라면 박스에 한 박스씩..
그 당시엔 귀하던 과자를 너무나 푸짐하게 사주시곤 했었다.
나는 말도 표정도 없이 무뚝뚝한 그 아저씨가 늘 무서웠지만..
엄마는 참 착한 아저씨라고 했다.
그 아저씨는 엄마한테 자주 이런 말을 하곤 했다고 ..
엄마는 또 자주 내게 자랑처럼 말씀해 주셨다.
"나중에 결혼해서 아이를 낳게 되면 애들교육시키는 건.."
"아주머니 방식대로 고대로 따라 할겁니다."
이렇게 주섬주섬 옛기억을 떠올리다 보니..
밑도끝도 없이 추억이 밀려온다.
오늘은 여기까지..
언제..또 추억을 들춰 볼 날이 있겠지..
나머지 추억들은 그때에 꺼내보기로 하자..
이만..
- 벗 님 -
옛날엔 대보름 때 찰밥 얻어먹으러 다녔지요?
저도 동네 형들을 따라 딱 한 번인가 다닌 적이 있어요.
등산길에 만나셨다는 그분,
그리고 벗님의 어머니(홍랑이 엄마)
(홍랑이란 이름 참 이쁘네요.
참고로, 대구 사는 제 외사촌 여동생은 '홍란'이에요.
기막힌 만남, 그래서 인생은 참 경이롭습니다.
제일중학교 옆 골목길 사진에 한참 시선이 머무네요.
제 어릴 적 동네에도 비슷한 골목이 있었어요.
아직도 이릴 적 풍경을 사진으로 남길 수 있다니... *^^*
그 중 구습이오빠가 성공한 이야기 , 귀가 번쩍 열리는 느낌입니다
등산길에서 만난 우연같은 인연 ...세상 참 좁습니다
누군가의 기억속에 고운 추억하나가 나로인한 것이라면 참 살맛나는 것이죠
딸부잣집 큰 딸은 서울로 시집가서 잘 살고 있다고 혹 구습이오빠 만나면 꼭 들려줄게요ㅎ
참 블로그에 구습이오빠네이야기도 있다고 꼭 들려 보라고.^^*
맞제?
요즘 애들에게는 또다른 우리세대가 알수없는 추억을 쌓아 가고 있겠지만 ..........
벗님의 이야기들을 들으니 옆집 언니도 생각나고,, 장물에 빠져서 하늘나라로 간 내친구도 생각납니다..그땐 참 무서웠던 기억..
셋방살때 서러웠던 지난 이야기들... 연탄 살 돈이 없어서 외할머니께서 아궁이에 나뭇가지를 넣고 불을 짚히시던..
눈물이 날려고해요... 가슴팍이 뻐근히 아파와요....에효,,,,,
그시절 호빵은 지금의 무엇과도 비교가 안되지 그 시절 작은 방.부엌도 없는 바람이 싱싱 들어오는
그 절 엄마들은 언니들은 잘 견디고 사랑도 많고 그래서 가장이 아무리 비틀거려도 자녀들을 위해서
자신을 온통 희생하고 한알의 밀알이 되었지..요즘에 주부들 중에는 남편이 경제적으로 빈곤해 지면
미련도 없이 철새 처럼 미련 없이 떠나버리고 많이 안타까운 세태..
그 시절을 잘도 그렸네.,칭찬~~~~^^
가난했던..시절
가슴 아팠던..시절
..그렇나..정다웠던..시절
저두 꺼집어 내면..많을 테인디...지금은 왠지...그냥...저..깊은 곳에..
두고 푸네요..현실의 삶이 더~무겁기 때문에...
추억이 되세김 되면...너무나 현실이 힘들기에...
그렇게 ...벗님의 추억으로 만족하는 하루되렵니다..
누구에게나 소중한 기억이 있으나..벗님처럼 이뿌게..갑이 되어 꺼집어 낼 수 있는 것은...
아름다운..선인이죠...기대되는데요..문득...문득..그렇게...나오는 이야기 봇따리가...궁금해지는 일인입니다...
나의 추억이 아름다워도..꺼집어낼 수없는 것이 싫치만...벗님의..그~추억들이..더~이쁘 보이는 것은...남의 떡이 더~커보이는 이치랑..맞을까낭...ㅋㅋ
먼소릴 하는지..웅~~~^^;; 즐주되세요..참..우나나...송이한테..안부라동..ㅎㅎㅎ
그럼요..추억은 좀 더 후일에 끄집어 내어 보여도 충분하죠..
추억이 어디 가나요..가슴에 기억에..고스란히 있을텐데요,,뭐..
보다 중요한 것은 현실의 삶인 것 같아요,
아직은 앞만 보고 열심히 걸어가야 할 때..
쮸니님도..벗님도..
아직은 그런 거 같아요..젊으니까..ㅎㅎ~~
전 옛날애인에 대한 기억도 정확한기억인지 의심스러울정도 인데...
진우오빠라는 사람은 마음이 여리고 정이많은 사림처럼 느껴지네요
오랜만에 Olivia Newton John의목소리를 들으니 얼마전에 봣던 토요일밤의열기가
생각납니다
저도 다음주에는 예전에 살았던 동네 한번 가봐야겠습니다
딱히 좋은기억은 별로없지만 집앞전봇대밑에 우리아이가 품바를 묻었던기억에...ㅠㅠ
사람이나 동물이나 배푸는 사람한텐 선하게 대하는 것이 인지상정...
벗님 내남자 장모님이 참 인자하시고 너그러우신 분이네요.
그 가난한 시절에 남에게 배푸는 게 쉽지않았을텐데...
그래서 지금 그 어머니에 그 딸 아닌가여...
그 시절..가난했지만 인정은 넘치던 시절이였던 것 같아요.
아무래도 허름한 집이지만 우리가 주인집이다 보니..
엄마가 세들어 사는 사람들에게 잘 하셨던 거 같아요.^^*
저요..전 엄마랑 참 마니 달라요.
엄말 닮았으면 참 좋았을텐데요.^^*
오래살다보니 마음이 따뜻한 사람이 가슴에 와 닿드라고요.
그래도 아직은... ㅋㅋ
아주 정겹게 읽었습니다.
문득 소설가 김원일의 마당 깊은 집 생각도 나구요.
정말 희한하게도 다시 어머님이 세 살던 분을 만나셨군요.
이야기 속에 벗님 부모님들이 참 잘 하셨나 봅니다.
아웃분들께 살갑고 정겹게 대해시면서 말입니다.
그런 덕에 벗님이 감정이 풍부하고 섬세하신 것 같네요.
저도 가끔 예전 동네를 가면 어린 시절을 떠올리곤 하는데~~
옛날에는 어려웠어도 정들은 많았어요.
오랜만에 반가운 비가 옵니다. 좋은 주말 되십시오~~벗님~~*^^*
정신적으로는 풍요로웠던 그 시절.......
이제는 오히려 그립기만 합니다.
그 때 그 시절, 기억나는 모든 이에게
하늘의 은혜가 함께 하시기를 빌어 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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