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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스무살 이야기

바닷가 시인을 만나던 날

by 벗 님 2012. 4. 15.

 

 

86년 8월 22일. 금. 비 조금 온 후 맑음.

 

 

 

 

824

 

 

 

바다가 검도록 푸르다는 걸 새삼 느끼며..

내 머릿결을 휘어감는 바닷바람은 사랑하는 이의 포옹보다 감미롭다.

왜 이다지도 조화로운 곳이 나보다 머언 곳에 있었더란 말인가..

얼마나 갈망하며 여기 이곳에 내 존재를 한 번 세워보고자 하였는데..

 

하얀 깃털..바다빛에 그을린 한 마리 물새가 난다.

나..그렇게 한 마리 날개를 갖고 싶어 하였고..

이 식어가는 마음을 불보다 뜨겁게 타올리고자 하였다.

그렇게 타오르는 빛으로 저 침묵하는 심연의 푸른 품에 꼭 알맞도록 안겨버리고만 싶다.

그래서 내가 서 있는 이 힘겨운 땅덩어리 위에서 잠시나마 떠나고픈 고단한 내 영혼..

 

 

 

 

파도야!

너는 구멍 뚫린 못 생긴 바위를 사랑한다고 외쳐대었지..

 

파도야!

그렇게 큰 외침으로 결코 사랑스럽지 않은 검은색 바위를

으스러져라 껴안고는 아쉬운 듯 밀려가버렸지.

 

파도야!

쉬지 않고 너는..

반응없는 무뚝뚝한 바위만을 한 줌 눈물방울만으론 부족한 듯..

포말로 부셔대는 눈물을 흩뿌려놓고는 또 그렇게..

 

 

 

 

 

 

 

 

오늘은 그리워 갈증하던 푸른빛 바다를 소유하였다.

 

그러나 아무러한 감동도 느끼지 못하고만 말았던 둔해진 내 감성..

 

바다를 향해 한 마디 애원도 하지 않은 채 웃을 수 있었던 내 영혼..

 

바람이 좋아 머릿결은 너울거렸고..파도 따라 물결쳐 부드러웠지.

 

바다내음 향기로와 가슴 가득 들여마시고는 조금씩 음미하며 토해내었지.

 

눈을 살며시 감고는 바다향기를 마음껏 마셔대었지.

 

머리가 핑 돌아 어지러워 혼났지.

 

 

 

 

문득..바위보다 고독해 보이는 한 사람..

진하게 느껴오는 고독과 바다를 향하던 서글픈 시선..

시를 쓴다 하였고 ..시에 잠겨버리는 그 모습..

나 또한 시인의  고독한 모습을 닮고싶어 하였는데..

오늘 따라 어색해지는 내 모든 언어..

시인 앞에서는 감히 부끄럽기만 한 내 나름의 문학이 초라해 견디기 힘들다.

 

그러나 시를 사랑한다.

시인을 동경한다.

세상 사람 누구나 시인이고..

시인의 한 마디 언어는 포말보다 영롱한 시로 되어 흩뿌려진다.

 

 

 

만남이란 얼마나 크낙한 은총인가..

내게 소녀보다 순결한 시를 알게 해준 만남..

운명이란 말이 얼핏 떠오른다.

나란 아이의 졸렬함을 조금은 더 넓게 해주었던 그 착한 마음..

 

시인의 하루 일과 시인의 하루 생각..

시보다 더 아름답게 느껴오는 삶에 대한 희망..

 

<실망한다면 그건 내게 잘못이 있는 거겠지요.>

 

오염되어 더러워진 바다를 바라보며 조용히 하던 말..

아~그래서 시를 쓸 수 있는지 모른다.

저 더러워 추해보이는 세상의 바다를 결코 겉모양만으로 판단하지 않고..

본질 속에 있는 아름다움을 찾아내려는 시인의 마음..

아~시인은 그래서 시를 쓴다.

 

 

나..시인이 되고프다.

세상의 외로움을 한 줄의 글로 쓸 줄 아는 시인이 되어야겠다.

한 자의 글마다 의미와 생명을 불어넣어주는 ..

나..정녕 시인이고 싶다.

 

 

 

 

- 스무살 일기 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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