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훗~~놀랐셨죠?
불량주부인 벗님이 웬 호박떡? 호박죽? 그러게요..
지난 추석에 엄마네서 늙은 호박..여남은 개 얻어 와서는
더러는 죽을 쒀 먹고..
더러는 썪어 버리고..
달랑 하나 남아 있는 조 녀석
요놈을 어찌 할까..궁리하다가..
주말 오후..
이젠 흰머리 뽑을 일도 없는(내남자 뽑는 거 포기했거든요.)무료함 속에..
문득 입이 궁금하다는 내남자를 위해
저 호박을 해치우기로 했습니다.
"내가 호박떡 해줄게요."
인터넷을 뒤적여..가장 간단하게 올린 뜨개쟁이님방 꺼를 읽고..
"뭐 쉽네.." 하며.. 도전 시~~작~~
아하?
저 뒤의 먼지 자욱한 술병들
어찌 내남자와 난 술은 거들떠도 보지 않는데
이런 저런 사연으로 울집에 굴러들어온 녀석들..
다른 집에서는 귀한 대접을 받는 모양인데..
울집에선 저리 천덕꾸러기랍니다.
손님이나 오셔야..쪼매 관심을 받을까..
♥벗님표 호박떡
주방 깨끗이 치워 놓으면
내남자가 다 알아서 해주겠다는 걸
심퉁을 부렸지요..
내가 알아서 할테니 신경 꺼욧~소리 팩~지르고..
자신 있었거든요.
내남잔..자기가 호박 껍질을 무지 잘 벗기는 줄 아는데..
보면 채칼로 대따 어렵게 벗기더라구요.
난..나름대로의 노하우가 있지요.
해운대 조선비취호텔 조리사였던
세째 월이한테 배운 쉬운 방식이 있거든요.
수박 껍질도 이런식으루 벗기면..수박이 참 이쁜데..
어찌 말로는 설명을 못하겠네요.
봐요. 딱딱한 호박껍질을 단숨에 다 벗겼지요.
고운 속살을 드러낸 호박의 자태가 참 섹쉬합니다.
엄마가 주신 새하얀 쌀가루
여기에다 얼른 소금이랑 설탕을 살짝 뿌렸습니다.
맛 보다는 언제나 건강을 주장하는 내남자가 보면..난리가 나거든요.
모든 음식에는 그 자체로 간이 다 되어 있으니
절대 간을 해선 안된다는 식..
에휴~~근데..난 간 안한 음식..진짜 싫거든요.
이거땜에 마니 부딪쳐요..우리..
어쨌든 설탕이랑 소금 ..몰래 투하하는 거 성공.
그리구..나름 머릴 써서 호박을 갈아 쌀가루에 버무렸지요.
빛고운 호박색 떡을 만들고 싶어서요.
이게 화근이였어요.
너무 질펀하게 반죽처럼 되어버렸거든요.
일단..죽이 되든 떡이 되든..해보기로 했습니다.
찜통속에 쌀가루 반죽을 깔고..
아침녘에 불려 두었던 통팥이랑 호박 잘게 썬 것을..
토핑으로 올렸어요.
사실..마땅히 올릴만한 재료가 없어서..퓨전식으로다 ..
몇 번이나 뚜껑을 열고 젓가락으로 쿡쿡 쑤셔보고
결국 우려하던 일이 현실로 나타나 버렸어요.
질펀하니 ..진짜 떡처럼 찐득찐득하게 되어 버렸어요.
그래도 보기엔 그럴싸 하지요.
맛도 뭐..괜찮았나 봅니다.
쏭이랑 내남자가 싸악~~다 먹어줬거든요.
♥내남자표 호박떡
내남자가 큰 소릴 펑펑 치며..주방으로 갑니다.
"이 사람아 모르면 배워야지.
왕년에 작은 아버지네 떡방앗간 할 적에
내가 옆에서 마니 봐서 아는데.."
한껏 잘난체를 하면서 호박을 채칼로 잘게 채썹니다.
"잘 봐아~~"
"칫~~"
쌀가루에 아무 간도 하지 않고..
위에 살짝 콩을 얹자고 꼬셔도
자기식대로 할거니까 간섭말라면서..
새하얀 떡가루에..노오란 호박 채들만 잔뜩 뿌려두기만 합니다.
완성된 내남자의 호박떡..
포슬포슬하니 백설기 같은 감촉이 괜찮습니다.
다만..아무 간도 하지 않아 밍밍한 게 흠이지만..
확실히 나보담은 한 수 위인 듯..
벗님 껄 드시든지..
내남자 껄 드시든지..
그건 입맛대루 고르셔요.
♥벗님표 호박죽
그리고 남은 호박으론 호박죽을 쑤기로 했습니다.
아까 반죽한 거에서 귀퉁이 한 뭉치 떼어내어..
새알을 만들었습니다.
저번 동짓날에..깜박하고 팥죽에 새알심 안넣었다고..
내남자랑 쏭이한테 핀잔을 들었던 게 생각나서..
야무지게 새알을 챙겼습죠..
호박죽이 보글보글 끓고 있습니다.
언젠가 잠시 한 눈을 판 사이에
호박죽이 금새 눌어서 탄내가 난적이 있어서
그런 실수 하지 않으려고..
이번엔..가스렌지 옆에 줄창 지키고 서서..
커다란 나무주걱으로 내내 저어주면서..
지극 정성을 다하였지요.
역쉬~~음식은 정성이 맛을 좌우한다는 ..
내남자랑 쏭이..참 맛나게도 먹습니다.
내남잔 두 그릇인지 세그릇인지..자꾸먹고..
원래가 호박죽을 좋아라 하거든요.
저녁을 먹은 쏭이도 한 그릇 뚝딱..
우나요?
우난..지 친구랑 무슨 레스토랑에서 저녁 약속이 있다고
출타 중이예요.
전요?
전 사실..호박 자체를 싫어해서요.
호박죽은 잘 안먹어요.
호박떡도 별루구요.
여튼 내남자랑 쏭이가 맛나게 먹는걸 보니
참 므흣 합니다.
"낼 출근 할 때 호박죽 좀 싸 드려요?"
"그러든지.."
후훗~~이건 대단히 맛나다는 내남자의 다른 표현입죠.
호박죽이랑 호박떡..넉넉하니 올려 두었으니..
체면 차리지 마시고..마니마니 드시고 가세요..
- 벗 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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