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새벽이면 달그락달그락..주인집 노할머니의 연탄불 가는 소리..
자명종소리와도 같이 우리의 새벽잠을 깨우던 그 소리가
몸과 맘이 유달리 추운 우리 자취생들에겐 더할나위 없는 따스함이였고 온정의 소리였다.
집에 다니러갔다 올적이면..
싸늘히 식은 방을 언제나 때맞춰 데워주시던 등이 굽은 노할머니..
덕분에 우리는 늘 따스한 겨울을 보낼 수가 있었다.
젊은 날에 청상이 되셨다는 눈이 예쁘시고 성격 좋으시던 주인집 아주머니..
그리고 직장생활을 하지만 본업은 시인이라는 아들과
그의 아내인 시집 온 지 얼마되지 않은 키가 크던 언니..
그리고 얼마 후에 태어난 토실하고 눈이 땡그랗던 손주 태민이..
그렇게 다섯식구 4대가 살던 집..
말해 무엇하랴..그 집의 아름다운 사계절 풍경을..
온 마당이 과수원이였고 꽃밭이였고 무슨 민속 전시장 같았던 나의 자취방..
반질반질하니 오랜 세월에 길이 잘든 폭좁은 툇마루에 올라서서
문풍지가 달린 옛날식 미닫이문을 열면..그 시절 나의 자취방안 풍경이 펼쳐진다.
맞은 편으로는 과수원으로 난 옛날식 여닫이 창이 보인다.
어느날인가..새벽녘에 부시럭거리는 소리를 잠결에 감지했지만..
언제나처럼 옆방 미대생들이 작업하다 늦게 들어와 움직이는 소린 줄로만 알았는데..
자다가 무심결에 벌떡 일어났는데..후다닥 ..거리는 다급한 발자국 소리..
분명히 닫아걸고 잠들었던 창문이 활짝 열려진 채였고 ..
다급히 달아나는 누군가의 멀어져가는 발자국소리가 들렸었다.
새벽을 가르는 나의 비명소리..
한참 깊은 잠에 빠져있던 사람들도
그 전날 술에 취한채 잠이든 옆방 선배들도
내가 방문을 열고 몇번이나 소릴 지른 후에야 놀라 뛰쳐들 나왔다.
그 다음날 바로 동진씨는 학교수업도 빼먹고 나의 창에 철망을 단단히 달아주었다.
아무도 넘보지 못할만큼 아주 단단하게 못질을 해주었었다.
지금 생각해봐도 아찔했던 그 밤 이후로 ..
난 한동안 그 날의 악몽에 시달리며 밤잠을 설치곤 했었다.
그 창 아래 방구석자리엔 주인집 마당에 있던 일인용의 작은 천소파를 놓아두고..바로 옆엔..
작은 체리나무로 만든 앉은뱅이 상으로 꾸며진 소박한 스무살의 화장대가 놓여져있었고..
그 오른쪽엔 그 시절 자취생들 누구나가 갖고 있었을 법한 천으로 된 지퍼식 빨간 옷장..
그리고 방문 옆 오른쪽 벽으로 누군가가 쓰다 버리고 간 나무 책상과 책장..
그 당시 유행처럼 구독해 보던 빨간표지의 타임지..
지금은 헌법만 남기고 다 내어다 버린 전공서적..
그리고 지루해도 무슨 의무처럼 읽어대던 사회과학서적들..
그리고 유안진 전혜린 강석경 이해인 ..그리고 오혜령..
오혜령의 수필집은 거의 수집수준으로 다 사서 모았었다.
그 당시 내 삶의 지침이였던 분..그 분의 삶이 아름다와 닮고 싶어하던 날들..
그리고 소월과 윤동주..만해..기형도 ..도종환..서정윤..백기완 ..김남조..구미리내 등등의 시집들..
그리고 철학서적 전집이 있었는데..그것도 약간의 의무감으로 읽었던 좀은 지루한 책들이다.
참 희안하게도 철마다 제 빛깔로 곱게 익어가는 과실을 보면..충동적으로 소주를 사다가 술을 담궜었다.
그 당시 한 모금의 술도 입안으로 들이키지 않던 나의 이런 습관을 선배들은 참 특이하다고들 했었다.
나는 그냥..유리병 안에서 발효되는 과정에서 우러나오는 그 과실들의 빛깔이 너무 고와..
단지 그 이유만으로 과실주 담그기에 집착했었던 것이다.
버찌..오디..살구.. 자두..복숭아..국화..장미..
어쩌면 술의 재료가 되지 못할 것들까지 빛깔 고운 것이면 무조건 나의 술재료가 되었다.
나의 술은 마실 것이 아니라 관상용이였기에..
내 방에 출근도장 찍듯이 매일 오던 녀석들은 언제나 그 술에 눈독을 들이고 있었다.
나중에 가끔 나..심부름 시켜 놓고 몰래 홀짝거린 적도 있다는 고백을 하기도 했었다.
그리고 또 하나의 나의 습관..
방안에 항아리 하나를 놓아두고 철마다 피는 꽃을 꽂아두었었다.
개나리가 피면 개나리를..살구꽃..복사꽃..매화..
사실 이른 새벽에 깨어 주인집 아주머니 몰래 그렇게 꽃을 꺾어다
욕심껏 나의 방을 치장했었던 것이다.
지금 생각하면 아주아주 이기적인 행동들..꽃들에게 너무나 미안한 범죄였다.
그 꽃진 자리마다 탐스런 열매가 맺힐거라는 생각을 그땐 하지 못했었다.
그냥 ..이뻐서 갖고 싶어서 죄인줄도 모르고 그렇게 꽃을 꺾었던 것이다.
방안에 후두둑 떨궈진 채 서럽게 누운 꽃잎들이 단지 슬프다는 생각만 할 줄 알았던 나..
가을이면 들녘에 나가..들에 핀 온갖 가을 들풀이며 들꽃들로 내 방을 가득 채웠었다.
하얀 수증기를 쐬어주면 풀빛이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어디선가 듣고는..
그렇게 하얀 김을 쐬어 방안 구석구석을 들꽃으로 채워 놓았었다.
내 방에 오는 후배녀석들은 운치 있다며 자주 찾아와
젊은 날의 방황과 사랑을 그 꽃그늘아래서 토로하며..그렇게 위안하며 찾아들었던 나의 자취방..
나는 그렇게라도 자연에서 피어나는 온갖 것들과 가까이 있고 싶어했었던 것 같다.
그만큼 자연에의 삶을 갈망하고 초록빛을 동경하였던
스무살의 여린 듯.. 강한 듯 ..
순백의 빛깔로 순수하던 나..
- 벗 님 -
살며시 미닫이 문을 열고 고개 내밀어 들여 다 보는 느낌
스무살의 눈으로 본 세상은 적당한 번민도 함께 했을테죠
사회과학서적을 의무적으로 읽고 순수문학을 가까이한
그래서 마음까지 넉넉하게 살찌운 모습
스무살이었기에 그 모든 것들을 더 가까이 할 수 있었을것
시인이며 작가들이 나 역시 좋아하는 사람들이라
더 한층 기쁜 마음으로 가까워진 느낌
아~~아 나도 풀냄새나던 그 순수자체였던 그 시절을
가만이 앉아 조근 조근 내려놓고 싶지만
생활이 빡빡하게 돌아가는지라 ...
비를 동반한 천둥번개소리가 요란한 어둠 거치는 시간
스무살의 벗님이가 너무 예쁘다는 생각을 해 보며 ...
그만큼..나의 글을 깊이 바라봐 주신다는 의미이겠지요..
그래서 늘 고마와요..
어쩌면 스무살의 가나맘님과 벗님의 마음이
참 닮아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그래서 저 또한 기쁘답니다.
너무 이른 아침을 깨우셨네요..
저 시간이면 나의 알람이 요란을 뜰 시간..
저는 이삼십분 더 뒤척이다 일어나곤 한답니다.
많이 바쁘시지요..?
어젠 우중 산행하고..행복에 겨웠던 하루였습니다.
오늘도 여전히 흐린 하루..
거제에는 천둥번개를 동반한 비가 내리는군요..
이런 궂은 날에도..
가나맘님의 하루가 또 빠듯하게 돌아가겠지요..?
아침 든든히 드시고 하루 시작하세요..^^*
오마이갓 벌써 4시넹 비는 이제 긋는듯하고...
삼경이 시작 되는 시간부터 깨어나 있었는데
야단났네 잠을 설쳤으니...
이젠 졸음이 살짝 찾아들려하고.
벗님이의 자취방 그곳에 그대로 고스란히 머물고 있을까?
그대로 머물고 있다면 정말 아름다운 곳일텐데...
난..그때...뭘했지...?
그저..묵묵히....ㅋㅋㅋ
그래서..지금도..넘 이쁘시다는....
참 순진했던거 같아요~ 1004~~~
월요일 아침 잠시 다녀갑니다.잘 다녀왔어요~
자취방의 추억은 누구에게나 소중한 기억으로 남아 있겠지요,
때로는 거움으로,,
때로는 슬픔으로,,
남자들의 자취방은 솔직히 말해서 나열하기 좀 그러네요,
방은 더럽고,
그기에 가끔씩 술도 한 잔,,
그리고 여학생들과 묘한 썸씽,,
요기까정만,,
또 월요일입니다,
휴일은 잘 보내셨지요
새로운 한 주도 사랑으로 가득 채워 가세요,,
몇년의 자취생활에도 꽃 한번 꽂아본적이 없는 나
잠시 금남의 구역을 들여다 본듯
그런데도 꼭 내 누이의 분내 나는 뒷방에 들어온것 같은 편안함
장대비가 내리는 날
행운과 건강이 함께 하시길....
무질서가 질서처럼..그 말이 맞는 듯 하네요..
꽃사다 꽂아주던 소녀이거나 여인도 없으셨나요..
참 편하다며..후배녀석들이 자주 찾아왔었지요..
와서 고민거리 풀어놓고..누나누나..하며 따르던 귀여운 녀석들..
후배녀석들에겐 후했는데..
동기나 선배들에겐 좀 해서..내방에 함부로 못왔었지요..
지금 생각해보니 그랬었네요..
아무래도 견제가 되지요..
그 당시에는 연상연하..그런 개념이 없던 때라..
장대비 내리던 어제..산행 다녀왔어요..
내일도 갈려구요..
지금 울산에 비가 내리나 보네요..
이런 날에도 가끔 출사 가시나요..
방안의 풍경을 그려봅니다.
소박한 가재도구에 철마다 피었을 꽃들과
빛깔고운 과실주....
벗님의 향기까지 묻어나
참으로 예쁘고 정겨운 자취방 풍경입니다.
시인이나 문학도가 되어야하지 않았을까....
얼핏 이런 생각도 드네요
철학서적, 사회과학서적은 의무적으로...
그랬지요.
두 눈 부릅뜨고.ㅎㅎ
아름다운 자취방에서 이것저것 잘 감상하고 갑니다.
저는 詩..앞에만 서면 작아진답니다.
제가 진정으로 쓰고 싶은 글은
짧으나 그 속에 많은 것을 함축하고 있는
아름다운 詩이거든요..
언제나 주절이주절이 긴 글이 되어버리는 나의 글..훗~
詩라 표현해 주시니 그저 황감할 뿐입니다.
고마워요..콧바람님..^^*
탄천은 좀 잠잠해졌는지요..?
다시 해가 나네요..
낼 또 산행갈려구 하는데..
부슬부슬 비라도 내리면 좋겠습니다.
비에 젖은 산빛이 얼마나 이쁘던지요..ㅎㅎ~
맞아요. 또 새로운 풍경이죠.
예전에 한창 산에 다닐 때
북한산에 가서 부슬부슬 비를 맞으면서
마냥 행복해 하던 그 날이 떠오르네요.
소꼽놀이 같은 자취방..
들꼴향기 폴폴했던 벗님 자취방 풍경
다 보이네요..
저도 여고때 3년간 자취생활 했거덩요~
그때 저도 벗님처럼 산들에 예쁜꽃들 많이도
꺾어다 꽃았었는데..
문학을 사랑하시고
많은 서적을 탐독하며 젊은날에 지으신
벗님의 마음에 집이 나이드셨어도
참 순수하고 그 깊이가 느껴져요..
창에 누구도 넘보지 못할만큼 든든한
철망을 달아준 동진씨는 지금의 옆지기님?
여린 듯 강한 벗님의 스무살..
자연을 닮았어요..
티없이 순수하고 맑고 푸르른...
소운님이 저의 스무살을 너무 잘 이해해 주실 때마다..
감성이 남달리 고우셨을 소운님이 상상되어졌었지요..
여고 때 자취를 하셨으면 ..무척 힘드셨을 거 같은데..
공부하랴..그림그리랴..혼자 생활하랴..
그래도 소운님이시라면..야무지고 살뜰하게 잘 해내셨을 듯..ㅎ~
아니예요..
저 때..내남자 군에 가 있었고..
동진씨는 한 해 후배인 옆방 미대생이였는데..
아~그리고 보니 동양화 전공이였어요..소운님처럼..
유달리 섬세하고 타고난 재능도 남달랐었는데..
지금쯤 화가로 활동하고 있을법도 한데요..
혹시 모르세요..?
사실 성이 가물거리고 이름도 100%장담하진 못하겠어서 물어볼 수도 없네요..ㅎㅎ~~
여전하시죠..?
건강도 괜찮으실거라 믿을게요..
날 더우니 몸 관리 잘하시구요..
그만큼 자연에의 삶을 갈망하고 초록빛을 동경하였던
스무살의 여린 듯.. 강한듯 ..순백의 빛깔로 순수하던 나..> 였는데
지금은 어떤지? 묻는다면,,,,,,,
아마 친정엄마의 영향이였던 거 같아요..
친정엄마는 철마다 꽃으로 과실로 술을 담그셨지요..
봄이면 엄마랑 뒤산에 올라 진달래 따다 술 담그고..
가을이면 국화핀 언덕에서 국화 따다 국화주도 담그시고..
어느날엔가는 약에 쓰신다며 연꽃 한송로 술을 담근신적도 있으셨지요..
아마도 그런 울엄마의 영향이 컸었던 거 같아요..
울엄마는 지금도 온갖 술을 담그시고 계시지요..
정말 술 한모금도 넘기시지 못하는 울아빠에 비해
항상 식탁에 술을 놓아두시고 반주처럼 드시던 울엄마..
전 울아빠를 쏘옥 뺐어요..
울엄마를 닮았으면 내 인생이 참 많이 달랐을텐데..하는 아쉬움이 늘 남아있답니다.훗~
종로서적앞..
그 시절 종로서적앞에 대한 공유할만한 추억이 없어 아쉽네요..
전 대구동성로 허름한 헌책방을 자주 기웃거리곤 했었지요..
여행님의 깊은 사유가 괜히 나온 것은 아니신듯..^^*
더운여름 건강하시길.....
감사합니다
거운시간...
더운 오후입니다.
그래도 여긴 비온 후라..바람이 산뜻합니다.
목사님도 건강하시길 바람니다.
더운 여름 잘 견디시고요..
고맙습니다.*
얼마나 놀랬을까......
짚어보내요....
그런데
벗님처럼 아름다웠던 추억이 별루 없었던것 같은 나의 스무살이네요....
고등학교때부터 갑자기 찾아온 경제적인 핍박은
대학등록금도 못낼 정도....
그러나 모든걸 뒤로 하고
몇날 며칠을 굶으며 내 고집으로 대학엘 갔지요...
처음 등록금만 내어주면 모든걸 내가 알아서 하겠다는 각서까지 쓰고...ㅎㅎ
그래서 아르바이트 하느라
추억다운 추억하나 못 만든것 같네요...
장학금으로 학비를 충당하자면 공부도 해야 했고....
화려한 시절을 전 그렇게 보냈지만
지금 생각하면
그때의 내가 없었다면
지금의 이 생활이 없었지 않았나 하고 생각이 드네요...
아마 가장 열심히 살았던 그 시절....
젊었기 때문이겠지요?
그래서 전 젊은이들을 사랑합니다.
그 당시엔 참 어려웠던 사람들이 많았던 시절이였지요..
가난한 고학생들..
내남자도 입버릇처럼 소팔아 대학 왔노라고 했었지요..
그럼 대학 졸업할 때까지 그렇게 스스로의 힘으로 학비를 충당하신 건가요..?
어리다면 어린 갓 스물에 어쩌면 그건 참 커다란 마음이 짐이였겠습니다.
힘겨웠던 날들 그렇게 견디시고 ..열심으로 살아 오셨군요..
그래요..그런 시절이 있었기에 지금의 오아시스님이 계신게지요..
그렇게 보내신 젊음..어쩌면 어느누구보다 값진 젊음을 보내셨을거라 생각합니다.
젊음..너무 좋지요..
바라만 봐도 흐뭇한 미소가 피어오르는..청춘..시리게 푸르른..
한 때..우리도 그런 젊음..그런 청춘을 소유했었지요..
젊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눈부시게아름다웠던 시절이였지요..
저도..오아시스님 만큼은 아니지만..
대학 4년 내내 구내 식당에서 아르바이트를 했었어요..
방학엔 아이들 과외나..교통정리를 했었구요..
장학금 탈려고 100명이나 되는 남학생들 틈바구니에서
기를 쓰고..공부도 했었구요..
훗~~
돌아보니..나..열심히 살았었네요..잊고 있었는데..
그렇게 열심히 살아온 우리 젊음앞에 헛되지 않게..
남은 날들..또 그렇게 열심으로 살아요..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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