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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산 이야기

산책같은 산행-북한산 대남문

by 벗 님 2009. 6. 30.

 

 

 

 

텅 빈 3호선 지하철..금방 한 대가 출발하고 나만 홀로 남겨져있다.

월요일의 아침..약속시간보다 5분 일찍 도착한 나는

그 이상의 여유를 만끽하며 은주씨를 기다린다.

 

그랬었지. 학창시절 12년간 지각 한 번 하지 않았던 나..

고3 때였던가..개학식날 단 한 번..

아슬아슬하게 교문이 거의 다 닫히는 순간에 간신히 통과한 기억..

 

 

 

직장다닐 때..

나의 상사는 한치의 오차도 없이 정확하게 출근하는 나를 질려했었다.

5분 정도 빠를 수도 늦을 수도 있어야 하건만..

난 늘 정시에 도착했고 정시에 퇴근했었다.

내가 생각해도 정나미가 떨어지는 정확성..

그건 어쩌면 비인간적인 느낌을 줄 수도 있었으리라..

 

나는 그 직장에 애착이 전혀 없었다.

빨리 출근하고 싶지도..늦게 남고 싶지도 않은 ..삭막하던 직장생활..

 

나는 그 때 이런 생각을 했었다.

여자야 정 싫으면 결혼이라는 평생직장에 안주 할 수 있겠지만

남자는 좋으나 싫으나 평생을 짊어지고 가야할 업이기에..

 

평생을 직장이라는 카테구리속에 갇혀 살아야하는 남자들이 참 안됐다는..

 

 

 

 

 

 

 

저기 은주씨가 밝게 씩씩하게 걸어오고 있다.

왠만한 남자보다 큰 키와 덩치..참 편한 언니같은 동생이다.

우리 막내랑 동갑인 은주씨가 나는 친구처럼 언니처럼 푸근하다.

별루 무난하지 않은 나를 잘 따르니..그것도 고맙고..

 

남편이 사준 등산복이랑 모자를 자랑하는 모습이 덩치와는 다르게 귀엽다.

최근에 1센티가 더 커서 ..174센티라고 한다.

남자들.. 군에가서 키가 자라오는 경우는 보았지만..(우리 외사촌 오빠가 그랬었다.)

아이놓고 키가 자란 여잔 처음 보았다.

나도 조금만 더 자라면 좋을텐데..

 

 

 

 

 

 

북한산성행..달리는 버스안에서 바라본 풍경..

행군하는 군인들의 모습..제법 긴 행렬이였다.

들은 바에 의하면 저 행군이라는 것이 그렇게나 힘이든다 그러던데..

 

행군과 유격훈련..그리고 가스체험..

내남자는 가스실 안에서 방독면을 벗고 어버이은혜 노래를 부르던 끔찍하던 기억을 얘기해 주곤 했었다.

견디지 못하고 쓰러진 내남자는 다시 한 번 더 하고서야 동료부축을 받아 겨우 통과했다는..

아주아주 오래된 이야기가 문득 생각난다.

 

제일 앞줄에 여자가 한 명 있었는데..만일의 사고에 대비한 간호장교인가?

저 군인들의 행렬에 낀 ..한 명의 여자가 나는 궁금했다.

 

 

 

 

 

 

저 앞으로 옅은 운무에 쌓인 북한산의 봉우리가 보인다.

월요일의 아침시간인데도 사람들이 제법 많다.

부부끼리.. 연인끼리..친구끼리..동료끼리..가끔 어색해보이는 남녀도 눈에 띄이고..

 

오늘 우리의 목적지는 그리 가파르지 않은 대남문이다.

은주씨는 홀로 몇 번 올랐던 코스라 하는데..나는 처음이다.

 

 

 

 

 

 

 산 초입부터  정상에 거의 도착할 즈음까지..

이 계곡을 타고 올랐다.

바위를 타는 산행..흙을 밟는 산행..능선을 타는 산행..

산행의 묘미도 각양각색으로 다양하지만..

나는 오늘처럼 처음부터 끝까지 계곡을끼고 하는 산행이 참 좋다.

 

 

 

 

 

 

이 코스라면..

가끔 마음 갑갑한 날에 혼자서 훌쩍 다녀가도 좋을 거 같았다.

 

또 하나의 나의 아지트가 생긴 셈이다.

스스로를 위안할 나만의 마음자리가..

 

 

 

 

 

 

 

 산 딸기..지나는 산길 옆 숲마다 산딸기가 익어가고 있었다.

빠알갛게 익은 것들은 이미 부지런한 어떤 이의 차지가 되어버렸고..

아직은 설익은 다홍빛 딸기들만 보인다.

 

그래도 몇 개 따서 입에 넣어보았다.

시큼하지만 맛으로 먹는게 아니라 추억으로 먹는 것이기에..

그 시큼한 맛조차 달고 향긋하게만 느껴진다.

 

 

 

 

 

 

계곡 물소리를 담는다며 한참을 저 징검다리 위에 머물렀다.

내목소리도 담기겠네..옆에서 재잘재잘..깔깔거리며

돌돌거리는 물소리를 담고 흐르는 물속도 찍고 있었는데..

 

문득 뒤돌아보니..

예닐곱명쯤 되는 사람들이 우리 뒤에서 아무 말 없이 서 계셨다.

그렇게 한참을 서 계신 듯 보였다.

 

 

 

 

 

 

"어머 죄송해요. 기다리고 계신 줄도 모르고 정말 죄송해요."

너무 당황한 우리 둘은 죄송하다는 말만 되풀이 하면서..

미안해 어쩔 줄 몰라했다.

'비켜달라고 말씀하시지 그러셨어요. 저흰 기다리시는 줄도 모르고.."

 

제일 앞에 서 계시던 아저씨..

"뭐 급할 거도 없는데 괜찮습니다." 그러시며 지나가신다.

뒤에 다른 분들도 그냥 아무말 없이 평온하게 지나들 가신다.

 

자칫 짜증스런 기다림일 수도 있었을터인데..

산이 주는 넉넉함 때문인지..

사람들의 마음도 도심에서의 그 강파름이 보이지 않고 여유롭다.

 

 

 

 

 

 

 

에구~~명색이 사진을 공부했다는 여자가 저러구 있다.

남편도 사진을 공부하고 사진을 업으로 삼고 있는데..

 

나보고도 맨날 똑딱이 들구 다닌다고 카메라 한 대 사라고 핀잔을 주더니만..

남편 카메라 사준다고 삼개월을 던킨에서 아르바이트까지 하던 여자..

참 그 마음이 이뻤었다.

 

 

 

 

 

 

대남문 정상..

저 멀리로 보이는 봉우리들이 노적봉 백운대 만경대 인수봉이라 한다.

나는 아직 백운대 밖에 올라보지 못했지만..

 

조만간에 저 봉우리들을 다 정복하리라..

 

 

 

 

 

 

샤론 언니가 그랬었다.

산행한지 3년이 되었는데 아직 북한산을 다 보지 못했노라고..

그만큼 무궁무진한 산이라고..

 

내남자가 그랬었지.

우리가 처음으로 북한산 백운대를 오르고 난 후..

이제 북한산은 올라봤으니 다음엔 다른 산을 가자고..

 

후훗~~지금 생각하니 그 말이 얼마나 순진무구한 말이였는지..

 

 

 

 

 

 

산 아랫자락에 내려와 발을 담근다.

주말에 빨래를 삶다가 뜨거운 물에 데었다는 은주씨..

물집이 터져 껍질이 벗겨진 걸 보니 가벼운 상처는 아닌데..

미련하게도 병원에 먼저 가지않고

나와의 산행약속을 지킬려고 그냥 왔다고 한다.

 

이 더운 날에 화상이라니..고생하게 생겼네..

 

 

 

 

 

 

 

발에서도 나이가 느껴진다.

11년은 더 나이든 힘줄이 불거진 나의 발에 비해..

11년은 더 젊은 은주씨의 발은 매끈하고 젊다.

 

내 왼쪽 복숭아뼈가 미운 것은..

중학교때..평균대에서 삐끗하여 금이 가서..

2개월을 기부스를 했던 자국이 남아서이다.

 

그 날..난 온 학교가 떠나갈듯이 울어제꼈고..

제법 멀리있는 병원까지 나를 들쳐업고 뛰어가시던 체육선생님의 거친 숨소리..

아픈 와중에도 미안함은 생겼었다.

한창 성장기인 여중생의 몸이 그리 녹녹한 무게는 아니였을터..

그리고 난 약간 통통한 편이였으니까..

 

  

 

 

 

 

 

이 계단에 서서 은주씨를 한참이나 기다렸다.

지난번 토니선생님과의 술자리에서..

술에 취한 회원들이 뒷처리를 깔끔히 하지 못한 것에 대한 왈가왈부..

 

저 아래쪽엔 젊은 대학생들쯤으로 보이는 무리들..

이짝엔 여학교 친구쯤 되어보이는 아줌마들..

저짝은 풋풋하고 이짝은 정겨워 보인다.

 

 

 

 

 

 

 

오히려 마음은 이짝 아줌마들이 더 젊어보이는 듯..

서로 사진을 찍어주고 장난스레 포즈를 취하는 모습이

오랜만에 만난 고향친구들처럼 다정하고 개구져 보인다.

 

물빛이 더 할 수없이 맑고 푸르다. 

저 아줌마들의 웃음소리도 물소리만큼이나 푸르고 맑다.

 

 

 

 

 

 

 

 

 

 

 

 

내려오는 길에 만난 개망초 군락지..

오늘 내가 본 가장 이쁜 풍경이다.

 

개망초만 보면 눈물이 나는..나는..

저 하얀 꽃무리들을 바라보고 바라보고 바라보았다.

 

 

 

 

 

 

- 벗 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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