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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가족 이야기

아빠의 병상일지2

by 벗 님 2013. 9. 13.

 

 

 

 

 

 

 

시골 벌초 끝나고 곧장 울산으로 향했다.

일주일만에 뵙는 아빠..

일반병실로 옮기실만큼 호전되셨다.

살도 조금 붙으신 거 같고 눈동자도 맑아지셔서..

이젠 사람도 잘 알아보시고 웬만큼의 의사소통도 가능해지셨다.

 

아빠의 병세가 어느 정도 안정이 되시니..

엄만 밀양텃밭에 배추 심을 걱정을 하신다.

" 그럼 엄마,오늘 내일은 내가 아빠곁에 있을테니..

  엄만 밀양 가서 홍랑이랑 배추도 심고 쇠비름도 캐고 그래.."

옆에서 듣고 계시던 아빠가 비료도 주고 오라고 당부를 하신다.

 

마침 홍주도 아빠곁에서 하루 지새울거라 해서

나랑 홍주랑 아빠 곁을 지키기로 한다.

 

 

 

 

 

 

 

 

 

  

 

아빠의 병실은 암병동 9층 젤 꼭대기..

폐암환자들만 있는 아빠의 병실..

아빠 맞은편의 아저씨는 49세..50대 한 분..60대  두 분..

아빠 바로 옆의 아저씨만 75세로 아빠보다 나이가 많으셨다.

요즘같은 100세 시대에 70대는 아직 청춘이건만..

 

밤이면 아빤 컨디션이 안좋아지신다.

정신도 조금 흐려지시고 무엇보다 잠을 전혀 주무시지 못하신다.

선망증세..

오랜 투병생활을 한 환자들에게 나타나는 증상이라고 하는데..

환자 본인도 옆에서 간호하는 보호자도 너무나 힘들다.

전혀 잠을 못 주무시고 잠시도 누워있질 못하시니..

무엇보다 자꾸 일어나서 걸으려 하시니..

아빠에게서 한시도 눈을 뗄 수가 없고..

주렁주렁 매달린 링겔이며 주사약들 소변주머니를 휠체어로 옮기고..

둘이서 아빠를 안아 휠체어로 옮기고..

그렇게 병원복도를 한 바퀴 돌고..

잠 한숨 못 자고 밤새 그 일을 십여 번은 반복했나 보다.

 

그래도 병실침상에만 누워 꼼짝을 못하시던 아빠가..

휠체어를 타고 그나마 바깥바람이라도 쏘일 수 있게 되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그렇게 휠체어만 타시던 아빠가

새벽녘엔 걸을 수 있을 것 같다고 고집을 부리신다.

반신반의 하면서도 아빠를 부축해 드리니..

정말 다리에 힘을 주시고 걸음을 걸으신다.

하룻밤의 커다란 수확이라면 수확..

 

자꾸 답답해 하시는 아빠에게 신선한 바깥공기를 맡게 하고 싶어

1층 출입구 밖에도 나가보고 6층 야외휴게실에도 두 번이나 다녀왔다.

홍주랑 나랑 아빠랑 그렇게 밤을 꼬박 새운다.

 

 

 

 

 

 

 

 

 

 

 

 

 

 

아빠의 병실에서 보이는 창으로 거대한 현대중공업이 보인다.

저 멀리로는 푸른 하늘과 바다가 겹쳐 보이고..

"아빠, 아빠 예전에 저기 현대조선소 다니던 거 기억나?"

현대조선소는 현대중공업의 옛이름이다.

젊은날..아빤 저곳에 몸담고 일하셨다.

푸른 작업복을 입은 잘 생기신 젊은 울아빠의 모습이 떠오른다.

 

여름날 방과 후엔 친구들과 어울려 일산바닷가로 해수욕을 가곤 했었다.

바닷가에서 실컷 놀다가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 안..

퇴근하시는 푸른 작업복의 현대아저씨들 틈에서 재잘거리고 있는데..

누군가 뒤에서 내 머리를 툭 쳐서..돌아보니..

환하게 웃고 있는 아빠의 얼굴이 눈에 가득 들어왔다.

그날의 아빠의 환한 미소를 나는 지금도 선연히 기억한다.

 

 

아빤.. 자꾸 이 창가로 데려다 달라고 하신다.

그렇게 잠시 앉았다가는 힘들다며 침상으로 가시고..

잠깐 앉았다가는 다시 이 창가로 데려다 달라고..

그러기를 밤새 얼마나 반복했을까..

 

말씀은 안하셔도 저 거대한 제국?에서 일하시던

젊은 날을 추억하고 계신지도..

 

 

 

 

 

 

 

 

 

 

 

 

 

 

 

다음날 날이 환하게 밝아도 아빤 잠을 주무시지 못한다.

덩달아 주야랑 나도 한 잠도 이루지 못하고..

평소에도 커피를 즐기시는 울아빠..

"아빠 우리 야외휴게소 나가서 모닝커피 한 잔 해요."

의사선생님 몰래..아빠가 즐겨하시던 커피를 간간히 몇 모금씩 드린다.

아빠가 좋아하시니깐..

 

이젠 물이랑 유동식은 드실 수 있게 되었다.

지지난 주..일주일 내내 물 한 모금도 허락되지 않아..

아빤 물을 찾으시며 무척 괴로워 하셨었다.

그때에 비하면 지금은 정말 많이 호전되셨다.

잠만 푸욱 주무실 수 있다면..

 

엊저녁엔 연희아지메랑 6촌 호철이가 다녀갔고..

시골에 벌초갔다가 오는 길이라며 고모님이랑 고종사촌들이 다녀갔다.

낮에 다시 이 휴게소로 바람을 쏘이러 나왔다가..

우연히 엄마의 외사촌오빠 더시는 분을 만났다.

참 공교롭게도 외5촌 아저씨께서도 암수술을 하시고 입원 중이셨단다.

다행히 초기인데다 경과가 좋으셔서 내일 퇴원하신다고..

 

 

그리고 참 기막힌 건..

그 오촌 아저씨의 큰 며느님이 아침 일찍 병원에 온 세째 월이랑 반갑게 아는 체를 한다.

둘이 예전부터 친분이 있는 사이라고..

참 세상 좁다지..

그렇게 얽히고 설킨게 우리네 인생사인지도..

 

 

 

 

 

 

 

 

 

 

 

 

 

 

 

 

 

간호사가 아빠에게 묻는다.

 

"아저씨 이름이 뭐예요?"

" 안녕"

" 아저씨 이름이 뭐냐구요?"

" 안녕.."

"아저씨 장난하시지 말구 정말 이름이 뭐예요?"

"안녕.."

" 그럼 아저씨 성이.. 안..이고 이름이.. 녕..이예요?"

 

소리를 버럭 지르시며.." 내가 이름도 모를까 봐..문 O O"

 

"후훗~~울아빠 이제 장난도 하시네.."

 

 그럼 주민등록 번호는?

"42..........."

"여기 어디예요?"

" 병원.."

.

.

.

간호사가 묻는 말에 정확하게 대답을 하신다.

" 와우~아빠 오늘 100점이네.."

 

그렇게 한잠을 못주무시고도 컨디션은 괜찮으신가 보다.

 

 

 

 

 

 

 

 

 

 

 

 

아빤..나를 빤히 쳐다 보시더니 이렇게 물으신다.

 

" 니가 내 딸 숙이 맞나?"

 

" 응..아빠..아빠 큰 딸 숙이.."

 

저번에 정신이 오락가락 하시는 중에도 나랑 눈이 마주치면..

 

나를 빤히 쳐다 보시다가..

 

"니가 내 딸 숙이 맞나?"

 

이렇게 물으셨는데..

 

 

 

 

 

" 응..아빠..아빠한테 젤 무심했던 큰 딸 숙이.."

 

"미안해..아빠.."

 

"엄마만 좋아하고 늘 엄마만 챙겨서.."

 

" 미안했어..아빠.."

 

 

 

 

 

 

 

 

 

 

 

- 벗 님 -

 

 

 

♬~~ 바보엄마 OST /신효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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