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7년 7월 12일 .비..
사람을 만난다는 것은 어쨌거나 좋은 일이다.
단 한 번의 여정에서 만난 사람..
그냥 스치면서 예전에 앞면이 있기에
그냥 겉으로만 인사하고 형식적인 말과 미소를 주고 받았지만
그 모두가 할 일 없는 우연은 분명 아니라고 생각한다.
많고 많은 사람들 중에 그 사람을 만난 것은
그 어떤 의미라고 가치를 조심스레 부여해 본다.
키만 훌쩍하고 마른형이지만 단단한 체구..
그리고 어딘가 모르게 어린애 같은 남자를 오늘 만났다.
스물 세살..
이름은 박 OO
곱게 자란 외아들.. 부유한 집안..
고생도 나름 했지만 여리고 착해 보이는 인상..
격투선수..좋아서 했다는 운동..
그러나 이제는 작은 회의를 느끼고 있으며..
아버지의 공장을 이어받기 위해 지금은 경험을 쌓고 있는 중..
울산은 처음이고 이리저리 여행을 하면서 각지의 친구들을 만나고 있다고 한다.
훗~좀 우습다.
처음 만난 사람에 대해서 이렇게 상세히 기록하고 있으니 말이다.
이러한 것은 어쩌면 내 이기주의의 발로인지도 모른다.
좀 더 많은 사람을 만나 얘기를 나누고 그를 이해하고 작은 기쁨이 되고
어떻게든 메마르고 고뇌 많은 우리 생..
우연한 만남이 가뭄에 내리는 단비가 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그리고 내 인생에 관계되는 일이라면 어느 것 하나소홀히 흘려보내 버릴 순 없기 때문이다.
시외버스 타는 곳을 물었고..거기까지 5분도 걸리지 않는 거리를 가는 도 중..
커피를 마셨고 얘기를 나누었다.
훗~~이것도 우습다.
계집애가 처음 만난 남자따라 다방에 들어가 커피를 마시고 얘기를 나누다니..
왠지 끌리는 사람을 만나
그 사람의 인생철학을 듣고 살아가는 얘기를 듣고 나의 얘기도 들려준다는 것은
신선하고 생기가 있는 일이다.
삶의 단조로움에 리듬을 주고
어떠한 만남이든 나는 그 속에서 열렬히 추구하는 소망이 있다.
되도록 많은 사람을 만나 그들을 사랑하고 그들의 기쁨이 되고
착하게 이해하고 인간이라면 누구나 지니고 있을 고뇌를 서로 조금씩 나누어
기쁨과 감사로 승화시키고자 함이다.
아주 사소하고 미미한 일에도 귀하고 소중하고 아름다운 가치를 부여하고 싶다.
그래서 내 삶을 풍족하게 하고 싶고
무엇보다 보장되어있지 않는 내일을 위해
오늘 모든 것에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순간순간이 되게 하기위해서다.
다방에서 나올 때..
떨어뜨린 손수건을 줏어주었고 버스 타는 곳까지 와서도 우린 그냥 계속 걷고 있었다.
내게 소중하고 그리운 사람과 나란히 걷기 위해 아껴두었던 강변을 나는 왠 낯선 남자와 걷고 있었다.
사람의 일이란 이래서 변화무쌍하고 알 수 없는 것 투성이인가 보다.
다음날..전화가 왔다.
서울로 떠나기 전에 다시 한 번 더 만나고 싶다고..
그러나 거절했다.
공중전화인데 꽤 오래 통화가 되고 있었다.
그냥 묵묵히 침묵이 흐르고 간간히 사소한 이야기가 오가고..
전화 끊기가 아쉽다며 계속 전화통에 동전을 넣고 있는 중이란다.
결국 40여분 수화기를 잡고 있었다.
하는 수 없이 내쪽에서 서울 무사히 잘 가라는 인사를 하고 끊을 수 밖에 없었다.
나는 내일도 누군가와 만남을 가질 것이다.
살며 내가 만난 사람에게 최대한의 정성을 쏟으리라.
그 순간에 할 수 있는 최선으로 사람들을 대하리라.
그렇게 그렇게 살아가고 싶다.
가슴과 가슴으로 만나 상처나고 구멍 뚫린 가슴과 가슴을 부비며
서로의 뚫린 곳을 메워주는 그런 인간다운 인간으로 눈물 떨구며 살아가고 싶다.
뜨거운 피의 전율을 느끼며 감동적인 생을 연출하고 싶다.
- 스무살 일기 中 -
♬~~
나라는 남자의 사랑은 이별에 지지않는다 이 한몸 죽을때까지 기다릴꺼다
언젠가 그 여자 내게 돌아올 테니까 그 누구도 그 여자를 사랑하면 안된다
- 벗 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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