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6년 10월 3일
학창시절의 단발머리 친구들이 얼핏 스쳐지나갔다.
그때의 내친구들은 모두 이 들꽃을 닮았다.
쬐끄만 중학교 1년생이였을 땐 난 장미꽃의 아름다움에 반해버렸다.
그땐 장미의 가시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탐내고 , 그리고 쉬이 꺾여버린다는 걸 몰랐다.
여고시절엔 학교 담장을 둘러 핀 내 키보다 한 뼘이나 큰
코스모스의 청순함과 그 소녀같은 여린 자태를 사랑할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청순함을 닮고자 하였고 그렇게 순수하고 싶었다.
지금도 간절히 원하고 있다.
그러나 서글픈 내 고뇌의 도피에 불과하다.
애써 부정해보지만 , 길바닥에 구르는 낙엽의 몸부림을 보고는 내 모습의 현실을 실감한다.
왜 이리 막막하고 서러운지 모르겠다.
네가 조금 원망스럽고 , 무엇보다 내 스스로에게 경멸과 분노를 느낀다.
이리저리 긍정해 보아도 마음의 안정을 구할 수가 없다.
두려움과 허망함..죄책감..
이런 것들이 난잡하게 흩어져 나를 더욱 괴롭히고 있다.
10월 5일.
오늘도 나는 이 들녘에 나와 앉아 이 글을 쓴다.
따슨 햇살이 내 온몸을 포옹한다.
풀벌레 소리가 눈물처럼 정겹다.
누군가 앉아 있다.
애기 나누고 싶다.
저 사람도 분명 외로울거다.
그리고 무언가 고뇌하고 있음이 표정에 어려있다.
누군가 등뒤에서 나를 부른다.
못들은 체 한다.
한갖 부질없는 관심이고 공허한 울림일 뿐이다.
너와의 만남에 감사한다.
벌써 너와 나의 마음 한 구석에 아픔은 잉태되고 있을지 모르지만
만남 뒤의 이별 또한 부정해선 안될 것 같다.
난 나 하나를 지킬 힘조차 갖지 못하였지만 ,
그렇다고 다른 어느누구가 나을 지켜주리라고는 생각지 않는다.
내 방에 돌아와 책상머리에 앉아 다시 쓴다.
내가 깔고 앉은 신문지 밑으로 매끄러운 감촉이 스치고 지나갔다.
순간 내 심장은 얼어버렸고 난 한 마리의 초록빛 뱀을 보았다.
내 발치에서 30센치 떨어진 바로 아래에서 혀를 낼름거리며 저편으로 미끄러져갔다.
도대체 아무런 정리도 얻지 못한 채 내 머리는 고통스러워하고 있다.
내 마음은 괴로와하고 있다.
< 스무살 일기 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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