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6년 10월 11일. 土. 먹구름 잔뜩..
어제 내린 비로 코스모스가 몸을 가누지 못한 채
비스듬히 쓰러져 있었다.
그러나 꽃잎은 소녀보다 여리고 순수했다.
내 자신 참 비참하고 가련해진 듯 하다.
헷세의 시에서 굴러나오는 영롱한 언어들에 한동안 매료 되어..
잠시 고뇌를 잊을 수 있었다.
그러나 외로울 수 밖에 없는 나..
어제의 어리섞음과 후회..
오늘의 나약함과 허망함..
그리고 내일의 두려움과 불안..
행복을 느꼈다.
엄마. 아빠, 동생들..
난 행복할 수 밖에 없는 아이다.
아..내 가족들의 품에서 영원하고 싶다.
지금보다 더 크지도 말고..
타인을 사랑하지도 말고..
객지에서 홀로 있다는 것이
갑자기 오늘 군림하던 먹구름보다 더 무섭다.
나는 나를 지킬 힘이 없고
어느누구도 나를 지켜주지 않으리라는 생각..
사랑조차도 나를 뺏고 있다는 생각..
벗님..
당신 안에서 머물고 싶어 하는 떠도는 부랑아입니다.
부디 받아주시고 제 지나온 잘못을 낱낱이 책하여 주세요.
이제금 끝없는 방황의 밑바닥에서
그대로 머물고만 말 것 같은 어리석은 영혼이
당신안에서 고요하고자 합니다.
자꾸만 언습해오는 두려움을 내 나름대로 씻어버리려 했지만
어찌 할 수 없는 나역한 저였습니다.
모든 것들이 슬픈 한숨 뿐입니다.
벗님 ..
당신 곁에 머물겠습니다.
영원토록 ..이목숨 다하는 날까지 당신을 사랑하다
그렇게 당신 품에서 잠들겠습니다.
더 이상 당신을 욕되지 않게 저를 냉혹히 처벌하십시요.
달게 감수 하겠습니다.
당연한 죄의 댓가라 알겠습니다.
그러나 두 번 다시는 당신을 배반하지 않겠습니다.
제 모든 것을 걸고 맹세합니다.
<스무살 일기 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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