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6년 9월 8일 . 월. 0시 12분.
벗님..
머리가 몹시 아프고 추워요.
몸살이지 모르겠어요.
자다가 여러번을 깨어 울었더랬요.
그만큼이나 아파서 운 것 보다 객지에서 나홀로 끙끙거리며
이 긴 밤을 새워야한다 생각하니 괜한 설움이 두 눈에 고였어요.
친구들에게 고운 사연 엮어 어서 전달하고 싶은데..
몸과 맘이 여유를 주지 않아요.
어저께는 미정이에게 글을 썼는데 여직 부치지 않았어요.
여기 옮겨 봅니다.
새벽에 내린 빗줄기에 눈물이 흐를 것만 같더니..
태양의 입김을 받고는 고대로 내 뺨위에서 마른다.
포도알같은 두 방울의 눈물을 뚝뚝 떨구고 싶다.
그래서 고만큼이라도 설움과 아픔..고민 같은 것들이
말갛게 씻기워질 수 있었음 참말 좋으련만..
언제나 아침이면 귀기울이던 오토바이의 부르릉 ~소리..
그 소리속엔 내게로 날아드는 고운 사연들..
때론 애절한 글월들이 꽃잎처럼 수놓아져 있단다.
오늘도 골목을 한참 나서고 있는데 그 소리가 들려 얼른 집으로 돌아갔단다.
아니나 다를까!
그리움에 목이 말랐고 한마디 다정한 언어가 요즘따라 얼마나 그리웠는지 모른다.
지금 내 목은 촉촉히 축여져 있고 ..난 소박한 기쁨을 느끼고 있단다.
진실로 산다는 건 얼마나 가치로운 일인가!
이렇덧 내 심장의 고동이 한시도 멈추지 않고 생동하고 있음이 감사하다.
미정아,
난 진정 얼만큼이나 진실할 수 있을까?
스치는 하루속에서 만남을 음미하면서 ..난 결코 진실하지 못하였음을 느끼고 만다.
나의 허실을 인정하기란 의미없는 슬픔이다.
삶이란 얼마든지 아름다울 수 있다고 나 또한 굳게 믿고 있다.
우리 인간들의 추함 속엔 상상못 할 아름다움이 잠재되어있다고 ..
얼마든지 아름다울 수 있는 게 우리네 사람들이라고..
난 눈물처럼 되뇌인다.
윤동주님의 시집..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를 첫장 넘겼을 때..
난 고개를 떨구었고 내 가슴은 죄의식에 저려들었다.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도서관에 앉아있다. 토요일 오후..
우리 젊음이 약동하기엔 황금같은 지금 이 시간..도서관은 한산하기만 하다.
한 페이지 책장이 넘겨질 때마다 우리 젊음이 그만큼 싱싱해지고 풋풋해지는 듯 하다.
지금 내머리가 엄살을 부리고 있다.
약간 피곤하지만 난 이 피곤함을 기꺼워하고 있단다.
내 몸은 비록 지쳐있지만..마음은 태양빛에 발산되는 신록빛깔보다 더 푸르다.
폭풍우 몰아치는 바다위를 항해하듯..그런 삶도 살아볼만하고..
호수처럼 조각배 노닐고 잔푸른 물결 일렁이듯..그렇게도 살고프다.
이렇게 펜대를 굴리고 있는 이 순간..
누군가를 생각하고..아름다운 상상을 하는 이 순간만은..
난 호수보다 더 고요한 마음을 얻게된다.
미정아,
사랑받으면서도 사랑할 수 없음은 나 하나의 이기심탓일까?
사랑이란 의미가 이성에 대한 감정으로 보편화해 가는 것을 막을 방도가 없다.
그래서 요즘 일기장엔 사랑하지 않겠다는 말만 반복하고 있단다.
무엇이 사랑인지도 정말 모르겠다.
사랑 받음 또한 괴롭기만 하고 감당할 수 없게만 느껴진다.
그런 건 훗날..
내 나이 성숙되고 나의 자아가 어느정도 형성되어 자신있게 발 디딜 수 있을 때..
그땐..아낌없이 내 사랑도 주어 보리라..다짐하곤 한단다.
만남을 피한다는 건 얼마나 비겁하고 옹렬한 일인가! 생각해 보지만..
난 아직 덜 자란 미숙아인 걸 어쩌니?
요즘은 <강의실->도서관->아르바이트->도서관->자취방 >
이렇게 바쁘게 쉼없이 움직이고 있단다.
그리고 책 속에 포옥 묻혀 많은 걸 잊을 수 있고..
외로움도 고독도 오히려 차분히 음미하고 있단다.
난 요즘 더 이상 바라는 게 없단다.
내겐 너무도 소중한 벗이 있고..이렇게 가끔이나마 편지를 띄울 수 있는데..
대자연은 푸르고.. 초록빛깔은 싱싱하고.. 하늘엔 별이 있고 달이 있는데..
무얼 더 바랄 수 있을까?
허황된 나의 이야기만 주절거린 것 같구나..
미정아,
엊저녁부터 내린 비가 내 마음의 방황을 말끔히 씻어버린 듯 ..
지금은 고요히 하늘과 땅을 음미한다.
만남이란 ..때론 슬프다 해도 어쨌거나 좋다.
정말 감사하고 싶다.
내 존재가 이렇덧 살아 숨쉬고 내 머리는 사고할 수 있음이..
더구나 삶은 얼마든지 아름다울 수 있는 것을..
네 편지 받는 날 글을 썼는데..이제야 부치게 되었다.
미정아, 대학생활 넌 잘 해나가고 있겠지?
믿어!
일천 구백 팔십 육년 구월 육일..
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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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건 - 내게오겠니'
- 스무살 일기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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