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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스무살 이야기

벗님만을 사랑할래요.1

by 벗 님 2012. 12. 1.
 

♬~~

박강수 - 꽃이 바람에게 전하는 말

 

 

 

 

86년 9월 6일. 토. 오전 8시경..

 

 

 

벗님..들어보셔요.

촉촉히 스며드는 빗물이 눈물처럼 정겹지 않으세요..

하얀 박꽃은 밤에만 피는가 보아요.

달빛을 쏘옥 빼닮았어요.

모윤숙님의 <렌의 愛歌>를 읽다가 빗소리가 내 마음에 젖어들어..

펜을 들었어요.

 

 

 

 

 

빗방울 하나에 보고픈 얼굴이 하나씩 떠오릅니다.

잊으며 살아왔더랬어요.

보고픔을 굶주리며 잘도 견뎌왔답니다.

 

그래도 비오는 날이면 왜 이리 좋은지 모르겠어요.

잔잔한 호수 위에 떠다니는 조각배처럼..

이 마음은 조각배 위에서 안식을 얻어요.

 

 

 

벗님..어제는 죄송했어요.

당신은 저의 이상이고 꿈이고 신앙이예요.

어찌 당신을 저 하나의 이성으로 착각하였는지..

참 철없는 언어들을 써버렸어요.

 

그렇게 오랜날을 당신을 잊으며 살아왔는데..

당신은 변함없이 제 곁에 머물고 계셨군요.

감사해요.

 

 

 

 

 

 

 

 

벗님..

 

정애에게 편지를 띄운지 제법 된 듯 해요.

경이에겐 여직 답장을 써보내지 못했어요.

요즘 무척 피곤해요.

오늘은 꼭 편질 띄워야겠어요.

경숙이랑 선생님의 답장을 얼마나 절실히 기다렸는지 아실테지요..

그러나 제 빈방에 돌아올 땐..하얀봉투가 보이지 않아요.

그걸 슬퍼하진 않아요.

단지 조금 외로움을 느껴요.

 

 

 

벗님..

 

누군가에게서 ..그냥 무심히 인사만 하고 지나치는 사람에게서 세 가지 선물을 받았어요.

제 방에 고이 자리잡고 있는 그 정성들이 부담스럽기만 하여요.

받아선 안될 것 같은데..돌려줄 용기도 제겐 없어요.

저란 아이가 누군가의 사랑을 받을 자격이나 있는지 모르겠어요.

 

벗님 하나의 사랑이면..전 더 이상의 그 무엇을 바라지 않아요.

벗님 외엔 다른 사람을 사랑하지 않을래요.

 

 

 

 

 

 

 

 

오후 11시 20분경..

 

 

벗님..

 

오늘은 할 얘기가 너무너무 많아요.

무슨 말부터 꺼내야할지 막막해지기만 하여요.

거꾸로 거슬러 올라가기로 해요.

밤에 있은 일부터 차근히 말할테니..부디 제어리석음을 탓하여 주셔요.

 

 

 

 

아! 이렇덧 답답한 가슴을 어떻게 씻어내릴 수 있을까요?

제 나이..이제 갓 스물..만 18세..

도대체 쬐그만 계집애가 사랑을 얼마나 안다고 ..제게 사랑이란 말을 꺼내는지 모르겠어요.

 

무얼까요?

무엇일까요?

도대체 뭐란 말이지요?

제 눈물을 훔치고 ..제 몸을 ..정신을 구속하려하는 게..

진정 사랑하기 때문일까요?

 

 

이런 게 사랑이라면 정말이지 사랑같은 거..받고 싶지도 않아요.

정처없이 자유로운 구름이 허무하다 느꼈지만..

오늘만큼은 제 부러움을 듬뿍 받고도 남음이 있어요.

 

자유롭고 싶어요.

사랑의 사슬에서 풀려나고 싶어요.

전 자유로운 줄 알았어요.

그렇게 그 애도 나로인해 구속받지 않고 자유롭기만을 바래요.

 

 

 

아~그러나 벗님..

저는 알게모르게 사랑의 올가미에 걸려버렸던 거예요.

 

벗님..

어찌 하여야 현명한지요?

왜 그동안 현명할 수 없었나 후회스러워요.

 

 

 

<스무살 일기 中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