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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산 이야기

고령산 앵무봉

by 벗 님 2012. 1.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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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12월 31일..

 

한 해의 마지막날..내남자와 난 산행을 가기로 한다.

이렇게 한 해의 마지막을 산행으로 마무리할 수 있어..

마음이 뿌듯했다.

 

 

 

 

 

앵무봉 B코스

 

 

 

 

 

 

 

 

 

눈이 언제 내렸지?

산에는 언제 내린지도 모를 하얀 잔설이 아직 남아 있었다.

혹시나 해서 아침에 아이젠을 챙기려는데..

평소에는 늘 걸리적거리며 눈에 띄던 아이젠이..도무지 보이질 않는다.

내남자랑 나랑 아침나절..

내 아이젠을 찾는다고 시간을 제법 허비해버렸다.

그러고도 결국 찾지 못하고..귀신이 곡할 노릇이다.

 

내남자가 "분명 당신이 어딘가에 꼼꼼하게 챙겨 뒀을거야.."

가끔 나는 너무 꼼꼼하게 챙기는 바람에..

내가 찾지 못하는 경우가 더러 발생하곤 한다.

 

건망증?? 치매초기??

여튼 내 두뇌가 점점 허리멍텅해져 가고 있다는 걸 느끼는 요즘이다.

 

출발시간이 지연되는 바람에 예정했던 북한산행은 포기하고..

가까운 고령산으로 가기로 한다.

지난번에 올랐던 A코스대신 이번엔 부두골로 해서 오르는 B코스로..

 

 

 

 

 

 

 

 

 

 

 

 

 

산행 초입인 부두골에서 조금 헤매였다.

바람 없는 날에다 햇살도 맑아 산행하기 딱 좋은 날이다.

오늘은 전세가 역전 되어..

나는 몸이 홀홀 가볍고 내남잔 자꾸 헉헉거리며 뒤쳐진다.

확실히..평소에 운동 하고 안하고는 산을 올라보면 담박에 표가 난다.

난 그래도 요즘 요가를 꾸준히 했지만

최근들어 운동부족인 내남잔 체력이 좀 부실?해졌다.

자주 쉬어가자 하는 내남자..

 

하산하는 부부산행팀과 더러 마주친다.

내가 먼저 "안녕하세요?"인사를 건넨다.

그러면 그쪽에서도 환히 웃으며 인사를 보낸다.

 

 

 

 

 

앵무봉(622m) 정상에서

 

 

 

 

 

 

 

 

 

그리 매서운 날도 아닌데 앵무봉 정상에 오르니..

서릿발이 섰다.

햇살에 반짝이는 서릿발이 보석처럼 빛이 나 참 영롱해 보였다.

 

정상에서 만찬을 즐기는 한무리의 남정네들..

옆을 지나치는데..부부잠자리에 관한 19금 이야기들이 오간다.

옆에서 서릿발을 찍고 있는 나 들으라는 듯..

 

 

 

 

 

 

 

 

 

 

 

 

 

새로이 지어 놓은 듯한 정자에 땀에 흠뻑 젖은 내남자의 옷을 말려두고..

우리도 간단히 챙겨간 소찬을 먹는다.

겨울산행엔 따끈한 컵 라면이 제격이다.

그리고 식후 커피 한 잔..

 

땀이 식으니 몸에 한기가 든다.손끝도 시리고..

그래도 이것 또한 겨울산행의 맛이라면 맛이다.

 

부부끼리..친구끼리..가족끼리..그렇게 산을 오르는 사람들..

산행초보인 듯한 젊은 아빠와 아들..

어린 아들이 목이 마르다 하는데 물을 챙겨오지 않은 모양이다.

우리가 가져간 여분의 물을 한 통 주니 고마와한다.

 

제법 가파르고 힘든 길인데 여기까지 올라온 아이가 참 기특해 보인다.

한 해의 마지막날에 어린 아들과 산행을 감행한 젊은 아빠의 모습도

풋풋하니 좋아보이고..

 

 

 

 

 

보광사에서

 

 

 

 

 

 

 

 

 

 

 

 

 

 

 

 

 

 

올라갈 때도 부두골 초입에서 조금 헤매였는데..

하산할 때도 길을 잘못 들어 산정의 군부대근처까지 가고 말았다.

어쩐지 내려가는 동안에

지뢰가 어떻고 하는 경고팻말이 자꾸 눈에 뜨이더라니..

하산하는 길이 어찌나 가파른지..

나는 한 번 나뒹굴고 두 번 미끄러졌다.

 

 

산 아래 보광사..엄마와 아이들..

느낌이..하늘나라에가신 아빠를 위해 한 해 마지막날 기도를 드리러 온 듯..

내남자도 대화를 들어 보니 그런 것 같다고..

마음이 아릿해졌다.

 

 

 

 

 

동네미장원 시류헤어에서

 

 

 

 

 

 

 

 

 

 

 

 

 

돌아오는 길..동네 미장원에서 내남자 이발을 하는 동안..

나는 할 일 없이 창가에 놓여진 다육이랑 놀고 있다.

머리를 자르고 나니..내남자..

그새 자란 흰 머리가 희끗희끗 더욱 눈에 뜨인다.

 

집에 돌아와..

나는 내남자 머리 염색해 주고..

내남잔 내 흰머리 뽑아주고..

 

 

 

 

아~세월..

 

그 누구라고 삐껴갈 수 있을까..

 

내남자의 머리 위에..내 머리 위에..

 

하얀 눈처럼 쌓여가는..하얀 세월..

 

 

 

 

 

- 벗 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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