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73
문수산 산행을 다녀온 다음날..
엄마랑 나랑 추억여행을 하기로 한다.
내가 여섯살부터 열 여섯살까지 살았던..
내 유년의 추억이 어린 동네..
내 동생들이 줄줄이 태어나고 자란 우리집..
아직도 그 자리에 고대로 있을까?
동무들과 어울려 뛰놀던 뒷동산은 그대로일까?
개발에 밀려 흔적조차 사라진 건 아닐까?
내가 살던 집..울 동네를 찾을 수나 있을까?
아주 소소한 옛자취라도 만나질 수 있을까?
이런저런 기대와 설렘으로 엄마랑 나서는 아침..
울엄마의 양산에 직사하는 아침햇살이 참 눈부시다.
엄마의 미소가 또 그렇게 맑고 눈부시다.
♥
내가 살던 동네..
아? 어쩜~~어쩜~~
"엄마..엄마..장미아파트가 아직도 있네.."
난 호들갑을 떤다.
세워진지 아마 30여년은 족히 된 ..장미아파트가 아직도 건재해 있다니..
저 아파트 지을 때..엄마는 한푼이라도 가계에 보탤 요량으로 공사현장에서 일을 하셨다.
그 때 목재에 박힌 못을 뽑는 일을 하셨는데..
발에 못을 몇 군데나 찔려 고생을 마니 하셨다고..
새마을 운동 바람으로 동네 여기저기 새집을 짓던 그 시절에..
어린 나도 벽돌 나르는 아르바이트를 했던 기억이 있다.
리어카조차 귀하던 그 시절에..
동네아이들은 세숫대야에 벽돌 한 두장을 담아서
머리에 이고 나르는 아르바이트를 했었다.
그러면 하루 몇십원정도의 짭짤한 용돈 벌이가 되었던..
어느날..울집에서 보면 앞산이던 산을 붉은 불도저들이 밀어 저 도로를 만들었었다.
저 도로 위에서 난 동생들과 세발자전거를 타곤 했었는데..
저 위 비스듬한 언덕에 올라가..트럭이 오면 그 트럭과 시합한다며..
세발 자전거 뒷쪽에다 동생들을 둘씩이나 태우고 야호~~하며 내리막길로 내달렸던..
지금 생각하면 너무 아찔한~~~
어느날은 내리막길에서 자전거 한쪽 바퀴가 이탈을 하는 바람에..
나랑 동생들은 도로바닥 위로 나뒹굴고..막내 태야가 다쳐서..
태야 업고 발동 떨어져나간 자전거 낑낑 들고..
집에까지 절뚝거리며 갔던 기억..
아~~
이제 동네 어귀에 도착했는데..
몽글몽글 떠오르는 어린날의 추억들이 너무나 많다.
굴다리 위에서 내려다 본 길..
예전과는 마니 달라진 모습이지만
내 기억속의 그 길이 맞다.
저 길로 쭈욱 내려가면
역전시장도 나오고..
울 큰집도 나오고..
초등 친구네 집들도 나오고..
엄마 몰래 하루종일 앉아 죽치던 만화방도 나오고..
내가 다니던 국민학교도 나온다.
차들이 주차된 저 위치에 맑은 개울물이 흘렀었는데..
동무들과 멱도 감고 빨래도 하고 물장구도 치던..그 개울가..
어느 여름날 폭우가 쏟아지던 날에 축대가 무너져..
개울가에 있던 슈퍼 앞의 평상에서 장기를 두던 슈퍼할아버지가 물살에 휩쓸려 가시고..
그 모습을 발만 동동구르며 지켜보실 수 밖에 없으셨다는 슈퍼할머니의 애통한 이야기로
한동안 동네가 들썩이고..
비 온 후면 길가로 오지 않고 ..
괜히 저 개울물로 해서 첨벙첨벙 ~~하교하던 우리들..
어쩌다 고무신 한짝이라도 떠내려 갈라치면 기겁을하고
물 위에 자빠지면서도 둥둥~~떠내려가는 고무신을 잡아채던..그 시절..
그 시절엔 고무신도 귀했으니..
아?이 굴다리 밑..얼마나 마니 오고간 길이던가?
아주 어릴적엔 축축한 습지였고 풀만 무성하던 곳이였는데..
이곳에서 반딧불이도 잡고 메뚜기도 잡고
학교 오가는 길에 괜히 강아지풀도 뜯어 후후~~불며 가던 길..
그 한쪽 구석에는 동네 쓰레기가 동그마니 쌓여있었는데..
그 쓰레기더미를 뒤지면 병뚜껑이며 바람빠진 고무공..깨진 플라스틱 조각이며..
이런저런 소꿉놀잇감을 수확할 수도 있어..
동무들과 자주 그 쓰레기더미를 뒤지곤 했었는데..
어느날..
불도저가 동네로 들어와 앞산을 밀어버리고..
장미아파트가 세워지고 ..
저 굴다리도 생겨나게 되었다.
아? 울동네 구멍가게..어쩜..그 시절 고대로다.
30여년의 세월이 이 동네만 살짝 비껴간 것처럼..어쩜~~~
그 시절엔 밀양상회라는 저 간판이 없었고 그냥 담배가게라고만 불렀었던 것 같다.
어린 여나문살의 나는 저 가게를 손가락 빨며 얼마나 마니 오갔을까?
윤도현의 담배가게 아가씨? 라는 노래를 들으면 언제나 떠오르는 이 구멍가게..
여리여리하고 얼굴이 하아얀 울 동네에서 젤 이쁜 언니가 항상 구멍가게를 지키고 있었는데..
어린 나이에도 난 그 언니가 참 예쁘다는 생각을 했었다.
어느날엔가 집집마다 텔레비전이 들어오고..
담배가게 아저씨가 안테나를 달려고 지붕에 올라가셨다가 감전사했다는 얘기를..
귀동냥으로 듣게 되었다.
그후..
참 정갈하시던 담배가게 아주머니가 아주 정갈한 모습으로 자살을 하셨다고..
난 그 기억은 없는데 엄마가 말씀을 해주신다.
여기 어디메쯤이 우물터였었는데..
저녁 지을 때가 되면..엄마는 머리에 또아리를 얹고
이 우물가에 와서 물을 길어가곤 하셨다.
내가 조금 자라면서 엄마는 그 물 긷는 심부름을
나에게 가끔 시키셨는데..
엄마가 내 머리 위에다 또아리를 얹어주던 그 순간..
그 찰나가 참 또렷하게도 생각이 난다.
그리고 저 언덕 위에 월남방망이를 팔던 집이 있었는데..
월남방망이..
집에서 까만 설탕을 녹여 동글동글하게 해서 나무젓가락 같은 것에 끼워 팔던..
요즘의 막대사탕같은 것이였는데..
엄마가 월남방망이 사오라고 돈을 주시면..
너무 좋아 폴짝폴짝거리며
저 언덕길을 오르곤 했었다.
엄마는 이런저런 옛기억을 떠올리신다.
"이 앞엔 전부 풀숲이 우거진 마을공터였었는데.."
"여긴 뒷산에서 내려온 개울물이 흐르던 곳이였었는데.."
기억난다.개구리낚시..
맑은 개울물이 돌돌 흐르고..토실토실한 토종개구리가 폴짝거리던 작은 개울가..
아빠가 가르쳐 주신대로 길가에 있던 쑥을 뜯어 돌돌 말아..무명실에 꿰어서..
가만히 앉아 있는 개구리 눈 앞에다 대고 알짱알짱거리면..
승질 난 개구리가 그 쑥을 덥썩 무는 순간에 잽싸게 낙아챈다.
지금 생각하면 어찌 그랬을까 싶지만..
그땐 개구리 잡아서 연탄불에 통통한 개구리 뒷다리를 구워먹곤 했었다.
그 시절의 우리에겐 메뚜기구이와 더불어 더 없는 간식거리였었다.ㅎㅎ
앞서가시던 엄마가 반가운 목소리로..
"숙아..이거 우리집 같다."
"엉? 진짜..?"
엄마랑 나는 여기저기를 막 둘러보곤..
" 엄마..마저마저..저 계단 보니까..맞다 마저.."
"글체? 이 나무대문 너거 아빠가 만든 고대로네.."
내가 살았던 집이다.
내가 여섯살 되던 해에 시골의 고향집을 팔고 이곳으로 이사를 왔었다.
그땐..마당이 깊고 너른 기와집이였었다.
울집마당은 한켠에 엄마가 텃밭을 가꾸시고도 ..
동네아이들의 놀이터가 될만큼 너른 마당이 있었다.
아침마다 싸리비로 흙먼지가 나지않게 마당을 반짝반짝하게 쓰는 일이
나는 참 좋았었다.
대문이 없던 우리집..
동네 아이들의 놀이터였고..
동네 아줌마들의 쉼터이기도 했던..울집 마당..
딸 다섯만 주루룩 낳다가..
내가 중 1이 되던 해에 우리막내 태야가 태어나고..
아빠는 추억과 정이 가득한 기와집을 허물고
그 자리에 저 양옥집을 손수 새로 지으셨다.
지금 도 생생한 저 주소..울산시 복산동 650-18번지..
방학이면 벗님과 나는 끊임없이 편지를 주고 받았었다.
중 1 겨울방학 중에..
그 날도 나는 마당을 쓸고 있었는데..
대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난다.
"누구세요?"
" 응..우리.."
살짝 내어다 보니 벗님이를 비롯한 우리반 친구들이 대여섯명 서있는 게 아닌가..
그 당시 엄마가 일하러 나가시면 난 동생들을 돌보고 집안 청소를 하곤 했었는데..
난 항상 마당을 제일 먼저 청소했었다.
왠지 마당이 그 집의 얼굴같은 생각이 있어..아침마다 세수하는 기분으로..
그러고 보니..방이며 마루며..집안은 어린 동생들과 더불어 엉망이였다.
소녀다운 고지식함에 나는 나의 그런 허트러진 모습을 친구들에게 뵈여주기 싫어서..
그 추운 겨울날..집안 정리가 될 때까지 친구들을 대문 밖에 세워두었었다.
벗님이가 "우리가 청소 도와줄께.."하는 소리가 들려와도..
청소 끝날 때까진 안된다고..ㅎ~
편지에 적힌 주소만 보고 물어물어 찾아온 벗님이랑 친구들을..
그 시린 겨울날에 이 대문 앞에다 세워두었으니..
나두 차암~~
너무 마니 변해버려서 우리집도 못찾으면 어쩌나..하는 것은
기우였다.
30여년의 세월이 무색할만큼..
그시절의 모습을 간직한 채 낡아가는 옛동네..
엄마는 우리가 살던 그 집을 보고 또 보고..
이리저리 자꾸 둘러보신다.
아빠가 손수 지으셨기에 더욱 애착이 간다 하시며..
저 집 지을 때..몇 달간..
나랑 동생들은 윗동네 사시는 고모네에서 지냈었고..
엄마랑 아빠..막내 태야는 이곳..그 당시에는 땅콩밭이엿던 이곳에다
움막같은 걸 지어 지내셨다.
그리고 아빠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손수 우리집을 지으셨다.
거실벽이며 천장을 원목나무로 덧대는 작업을 하시던 날..
그 날 ..아빠는 밤을 꼬박 새우시며 그 일을 하셨는데..
어린 나도 아빠가 하시는 일을 옆에서 시중들어 가며..
자투리 나무에다 망치로 못을 톡톡 쳐가며..
그렇게 아빠랑 밤을 새웠던 기억이 있다.
너무 좋았으니까..
우리집이 하나하나 만들어져 가는 게..
어린 맘에도 하도 신기하고 좋아서..
우리집 뒤안을 살펴보시는 엄마..
부엌문이 뒤안으로 나 있어서 뒤안에다 평상을 펴 놓고..
어린 동생들이랑 밥도 먹고 수박도 쪼개 먹고..
국수도 삶아 먹고..
그랬었던 기억..
엄마는 어린 육남매 키우시던 이런저런 추억들이
더 마니 생각나시겠지..
왼쪽에 부엌문이 보이고..
저 단지가 있던 자리..
내가 살 적에도 저기에 단지들이 놓여있었지.
한날은 친구들과 고무줄 놀이를 하고 싶은데 고무줄이 없어서..
곰곰히 생각하던 내가 기발한 아이디어를 내었지.
저 장독에 둘러있던 고무줄을 싸악 걷어서는 얼기설기 엮어서..
장독뚜껑도 닫는 둥 마는 둥 해놓고는
친구들과 신나게 고무줄놀이를 했었지..
장에 갔다 돌아오신 엄마께..
그 날..나 디지게 맞았었지..아마? ㅎ~
에휴~~추억여행하다 보니..
새록새록 ~~웬 추억들이 이리도 퐁퐁 ~~ 생각나는지..
일단 한 숨 돌리고..오늘 이야기는 여기서 마름해야겠다.
- 벗 님 -
님 블로그보면서..잼나시 것 습니당...
저는 그 목적으로 블로그합니당..
아주..나쁜넘이죠..ㅋㅋㅋ
그때는...다음에서..블로그하는 비용받 것죠..
그래서..고민입니다..어케..비켜가징...ㅎㅎ [비밀댓글]
그게 왜 나쁜..넘..??
전..나중나중에..울 딸들에게 보여주고 싶어요.
그 냥 내 삶의 기록이고..나 살온 날..생각들을 남기고 싶음이지요.^^*
설마요??
무슨 비용을 받을려구요?
전 비용걱정보다..다음이 망할까봐..그게 걱정이라면 걱정이예요.
그래서 네이버나 다른 곳에다 저장해 둘려구요.ㅎ~
[비밀댓글]
전..그냥...후회없이 살았다..미소짓으며..
말년을..꿈꿔봅니다..
그래서 지금은 조금이라도 젊을때 열심히..살려구요..ㅎㅎ
딸들을..위해서...좋은 그리움이고..힘이 되는...것이면..좋겠지만...
이렇게 살아야지...한다면...폭이 좁아지지 않을까요...조금은...희망차게...님이 안해본 것도 하라고 하삼ㅎㅎㅎㅎ [비밀댓글]
어린시절 다니던 국민학교.. 세수대아에 나르던 벽돌의 추억.. ㅎㅎ
그런데 월남방망이는 먼지 모르겠네요 ...
글을읽는다고 한참 걸렸습니다.ㅎㅎ
좋은 주말되세요
한참 걸려 읽어 주셔서 참 감사해요.
사실..이런 구구절절이 긴 글..다 읽으시는 분..
몇 분 없으실텐데..ㅎ~
어린시절 생각하면..떠오르는 자잘한 에피소드들이 참 많아요.
그냥..생각나는대로 ..그래도 최대한 줄여서 쓴다고 했는데..
좀 길었죠? ㅎ~
추억 여행이야기..며칠 걸릴 것 같아요.
할 이야기가 많아서리~~
월남방망이..??
저도 잘은 모르겠지만..아마 베트남에서 넘어온 그 시절 막대사탕이였지 싶어요.ㅎ~
애들 개학했죠?
구급차로 모실려 했는데...병원에서 반대해서 마지막으로 고향 땅 못 보여 드린게 지금도 후회됩니다.
아주 참 잘하셨읍니다.
두분의 여행은 황금여행이었음을....
남자분들이야 고향땅엘 해마다 때마다 늘 갈 수 있지만..
시집 간 여인네들이야..쉽지 않은 일이지요.
저두..큰어머님 산소에 모시러 간 이후..못 가 보았네요.
요즘 들어..딸들에게도 엄마의 고향땅을 보여주고 싶은 마음도 생기고..
엄마도 고향에 가보고 싶다 자주 말씀하시네요.
저곳..울산은 ..제겐 제 2의 고향같은 곳..
제 유년의 세월이 머문 곳이지요.
올 가을쯤엔 엄마랑 꼭 엄마의 고향엘 다녀올려구요..꼭~~
사모님 에스코트 해서..
사모님 고향엘 함 다녀오심..??
다래님 말년이 탄탄대로일 것 같습니다만..ㅎㅎ~~
벗님...사모님호칭은 쓰지 마십시요...
원래 사모님은 은사의 부인을 일컫는 말이니...ㅋ...
저에게는 내여자로 해주셨으면...저도 벗님 남편분을 내남자로 표현하오니...
제처 고향은 서울이랍니다.
고로 그 어떤 추억도 없는 듯 해요..ㅎ...
다만 장인어른 고향이 이북이라...꼭 한번 모시고 가고 싶었는데...
돌아가시기 바로 전 파주 통일전망대와 임진각만 모시고 갔엇지요...^^*
알았어요.
파주 쪽은 집이랑 가까워 수도 없이 갔었지요.
통일전망대도.. 임진각도..
다래님 내여자분?..참 대단하신 거 같아요.
시어른 모신거 하며..다래님 내조하시는 거 하며..
보통의 여자들은 못 하는 거랍니다.
복 받으신거예요..다래님은..^^*
벗님따라 오늘은 행복한 추억여행~ㅎ
그런데 푸른님이 궁금해하시는 월남방망이는....사탕인가요~ㅎ
들어본 것도 같고.....기억이 가물가물~
예전에 살던 집이라~~
예전에 다니던 학교만 다시 찾아가 보아도 그시절이 파노라마처럼 떠오르더라고요!!!!!!!!
글쓰기 읽는동안 나도 추억속에 빠져드는 기분~
기차안에서^^
나도 시골을 내려갈 기회가 있으면,
찾아보곤하는데
현재는 빈 공터로 차창가로 눈길이 가곤 합니다..
태어난 집은
아직 가보지를 못했으니,
일부러는 아니더라도
문산땅에 가는 길에 언제 (구)일산을 찾아봐야겠어요..
정겹다...
대화체로 풀어내시니까..
정말 그대로 간직되어 있었나요?
신기합니다..
저도 어릴 적 잠깐 살던 시골동네가 눈앞에 선연한데
찾아가 보고싶은 마음만 있었어요
벗님 포스트 보고나니 혼자라도 찾아낼 것만 같아요
우리집도 그대로 있을 것 같구..
어린 내 동생이 골목을 뛰어 오다 넘어져서 무릎이 까졌는데
사람살려라고 고함지르는 바람에 동네사람들 다 뛰어나왔던
기억이 불쑥 떠오릅니다 ㅎㅎ
어머니와의 추억여행, 참 보기 좋아요^^
걱정을 하였더니만..신기하게도 그 주변은 다 개발이 되었는데..
내가 살던 동네는 정말 그대로..마치 시간여행을 하고 온 듯한 기분이였답니다.
덕분에 엄마랑 나랑..많은 추억의 장소에서 이련해졌던 추억을 끄집어낼 수도 있엇구요.
시골동네면..아마..그대로 있을거예요.
가능하다면 함 찾아가 보셔요.
딸들이랑..여행처럼..^.*~
문득 떠올라 찾아가 본..어린시절의 옛동네..
무언가 마음의 숙제를 하고 난 듯..
홀가분하기도 하고..참 좋았더랍니다.^^*
시골에 가서 방콕만 하다가왔어요...동네 이곳저곳 구경도 안댕기고..
제가 그렇답니다...ㅋㅋ
지난 시절을 되돌아 보는 것...
아픔까지도 사랑스런 기억으로 되돌아 오지요.
저의 어린 시절과 비슷한 추억을 가지고 계시군요.
가슴 저리게 읽었습니다. *^^*
꿈속에서 어머니와 함께 발자국을 찍던 일,
그래서 깨면서 막 울었던 일,
그게 제 시 <공명>의 이야기인데...
이렇게 어머니랑 옛길을 더듬어 다니시니
오.. 찬양 받아 마땅한 벗님이시여....
'♥삶 > 나의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엄마랑 떠나는 추억여행3-내 놀던 옛동산 (0) | 2011.08.22 |
---|---|
엄마랑 떠나는 추억여행2 -유년의 뒤안 (0) | 2011.08.22 |
엄마, 사랑해 (0) | 2011.08.06 |
딸들이랑 국제체조경기 관람을 하다 (0) | 2011.07.12 |
달빛 추억 (0) | 2011.07.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