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7
언젠가 필리핀의 클락 공항에서 내려 바기오로 가는 새벽길대여섯시간을 달리는 내내 펼쳐져 있던 너르고 평평한 평원..
그 끝이 없을것만 같던 평원길을 달리며..
어느 곳 어느 마을이나 산으로 둘러 있는 우리나라가
새삼 고마웠고 축복받은 땅이란 생각이 들었다.
문득..
서울도심에서 이리 올라볼 산이 있다는 사실에 기뻤다.
아직은 하얀 잔설이 남아 있던 2월의 어느 날에..
내남자랑 산책 처럼 가벼이 올라 본 봉제산..
♥
저어만치 봉우리만 보이는 산을 찾아가는 길에
지나는 마을의 담장 아래에서 만난 풍경..
서울주택가에선 쓰레기를 이런식으로 버리는가 보다.
사실 아프트생활만 해오던 나에겐 생소한 풍경이였다.
비록 쓰레기를 버리는 곳이지만 꽃으로 장식해서 위화감을 줄이고
주변도 깔끔하게 정돈해 놓은 모습이 인상적이였다.
주택가라 골목골목마다 사잇길이 얼마나 많은지..
몇 번의 막다른 길도 만나 돌아나오고..
산은 저만큼 보이는데..저 산을 올라갈 길을 찾지 못하겠다.
할 수 없이 지나는 사람에게 물어 산길 올라가는 길을 겨우 찾았다.
저 좁은 골목길을 통과하면 산으로 가는 길이 나온단다.
처음 온 우리가 어찌 저 좁은 골목길을 알 수 있었으랴..
인위적인 계단길을 싫어하는 나이지만
이 나무계단은 정감이 가..마음에 들었다.
한 계단 한 계단 만든 이의 정성스런 손길이 느껴진다.
야트막한 산이라 금새 올라왔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기다란 산 능선길을 따라 걷고 있었다.
점심 후에 산보처럼 올라보기 딱 좋은 곳이라..
주변의 동네사람들이 자주 오르내리는 산인 듯 하다.
저 만큼 앞에 등을 구부린 아저씨 한 분이 보인다.
무얼 하시나..가까이 다가가 보니
봄날에 피어날 화초를 심으시는 중이시란다.
타인에 대한 배려 ..저 아저씨의 꽃같은 마음이 느껴진다.
겨울날 같이 경직되어 있던 내마음이 괜스레 따스해진다.
비스듬히 누운 저 호미마저 내마음에 작은 미소를 던져준다.
좁고 비탈한 산길을 아슬아슬 자전거를 타시는 아저씨 한 분..
연세도 있어 뵈이시던데..
건강하게 오래 행복하고 싶다 하는 누구나의 소망처럼..
내가 아는 모든 이들이 건강하게 오래 행복했으면 좋겠다.
아프지 말고..
산정의 한켠엔 커피를 파는 간이카페도 있고
바람막이 비닐천막 안엔 어르신들이 장기며 바둑을 두시며
오후의 한 때를 소일하고 계신다.
올라간 길과는 다른 방향으로 내려오는 길..
페허가 되다시피한 산 아래 마을..판자촌..
저 플랜카드가 을씨년스레 걸려 펄럭이고 있었다.
마음이 그랬다.
더러는 피치 못해 떠나가고 ..
더러는 거의 폐허가 되다시피한 마을에 남아
차마 떠나지 못한 사람들..
오죽했으면 산아래 이곳에까지 와서 삶터를 꾸렸을까..
도심의 빌딩숲을 차로 달리다 보면..
세상 속에는 부자도 참 많구나 싶은데..
세상 속에는 가난한 사람들이 너무 많다.
어느 집의 높다란 담장을 장식하고 있던 유리병조각..
어린날에 보고 참 오랜만에 다시 만난 풍경..
도둑 들지 말라고 담장에 저리 유리파편을 박아놓곤 하던 집들..
이곳에서 만나니 새삼 반가와서..
늘 그렇지만 장독이 있는 풍경은 다정하고 이쁘다.
어느 오래된 빌라의 구석진 자리에 놓여진 장독대가
내눈엔 이뻐서..
날은 여전히 차고 마음 겨운 날들이지만..그래도 ..
세상속엔 이쁜 것들도 이쁜 마음도 참 많은 것 같아..
- 벗 님 -
'♥삶 > 산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봉제산5-진달래꽃이 피었습니다 (0) | 2011.04.05 |
---|---|
봉제산4-근심 없는 삶이 있을까 (0) | 2011.04.02 |
봉제산2-숨고르기 (0) | 2011.03.19 |
봉제산1-위로가 되어주었던 산책길 (0) | 2011.03.19 |
우장산2- 산책 (0) | 2011.02.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