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일에 엄마랑 이모랑
내 인생의 여행..
얼마나 긴 여정이였을까..
돌아보면 한걸음에 달려 온 듯 ..섬광같은 찰나찰나들이였다.
이제 가을의 정점인 음력 9월 9일이면..42년간의 여행에 또 하나의 쉼표를 찍을 수 있다.
내가 울엄마에게 참 감사한 것 중의 하나가..
일년중 가장 아름다운 계절..그 계절이 절정에 이르는 중양절에 나를 낳아주신 것이다.
국화가 가장 만발한 날에..잠자리 날개 같은 도포자락 휘날리며..
옛선비들은 산으로 들로 나가서 국화에 대한 시를 읊었고..
마음 붉어 언제나 설레이는 동네 처녀들은 화전놀이 가고..
마음 분주한 동네 아낙들은 국화주를 담그고 국화전도 부치고..
이렇덧 온 산야에 국화 만발하여 그 향에 세상도 사람도 취하는
그토록 아름다운 날..중양절에 내가 태어났고..
그렇게 내 인생의 여행은 시작되었다.
빛바랜 사진 속에서 엄마 품에 안겨 ..
내 첫그리움이였던 울이모와 함께 찍은 사진..
가장 오래 된 내모습..아마 백일 사진인 듯하다..
초롱한 눈망울로 무언가를 바라보는 나..
내 생명혼이 저 눈망울 속의 나로 들어가..
사진 속의 아가인 내가 바라보는 것을
현재인 듯 바라보고 싶다.
무엇을 바라보고 있었던 것일까..?
유추해 보건데..
울아빠가 특유의 눈웃음으로 우리를 바라보고 계셨을 것이고..
나는 너무나 젊어 눈부셨을 아빠를 일순간 쳐다보았을 것이다.
아니..어쩌면 비로소 시작되는 인생의 걸음마를 눈 앞에 두고..
아가인 내 앞에 펼쳐진 길고 긴 인생길을 바라보고 있었는지도..
저 아가가 나였다니..내가 저 까만 눈망울의 천사였다니..
1학년 가을 운동회때.. 울엄마,아빠..너무 마르셨다..
나의 유년..
내 유년의 뜨락은 천상의 정원이였고 나는 여전히 겨드랑이가 가려운 날개 없는 천사였다.
종일을 산으로 들로 뛰어다니며 타잔놀이에 여념없었던..계집아이..
난 언제나 제인보다는 타잔이 되고 싶었다.
세상의 중심은 나였고.. 우리동네 송골새가 세상이였고..우리집이 왕국인 줄만 알았던 ..나
유년의 나는 소심하지도 않았고 울보도 아니였다..오히려 그 반대였던 것 같다.
유달리 책을 좋아했던 아이..
동화책이 귀하던 그 시절..나는 이야기가 있는 글이라면 닥치는대로 읽었던 것 같다.
국어책엔 이야기가 있어 동네 고학년 언니 오빠들의 국어책을 죄다 읽곤 하던 나..
책에 빠지면 바로 옆에서 엄마랑 동생들이 그 당시엔 귀하던 새우깡을 먹고 있어도 모르던..
엄마랑 동생들의 킥킥 웃는 소리에 그제야 돌아보던 기억..
우리집에 세들어살던 월남전에 갔다 왔다던 진우 오빠의 무서운 형이 읽곤 하던 ..
깨알같은 글씨체의 세로줄이던 로빈슨 크루소를 만난 것도 열 살 전이였다.
요즘처럼 도서관이나 서점이 없던 그 시절..
난 10원만 생기면 동네 만화방으로 달려가서 종일을 있었다.
초등학교 2학년 운동회날..엄마는 아이스케키 사 먹으라며 50원을 주셨다.
난 그 길로 만화방으로 달려가서 또 종일을 있다가 어둑해질 무렵 집으로 갔다.
그 날..내가 엄마에게 매를 맞았는지는 기억에 없다.
단지 엄마가 내 책가방이며 책들을 죄다 집앞 도랑에다 던지시며
이제 학교고 뭐고 다 때려치우라며..불같이 화를 내시며 우시던 모습과
도랑에 어지럽게 던져진 채 젖어가던 교과서들을 보며 통곡처럼 울어대던 내모습만이 선명하다.
운동회 중간에 없어진 나를 ..엄마랑 선생님이 그렇게 종일을 애태우며 찾아다니셨다고 하니..
그 날 이후..나의 만화방행은 그만이였다..
그 후론 정말 한 번도 가지 않았던 것 같다.
아빠가 무엇이 갖고 싶으냐 물으시면..
열 살 즈음의 나의 대답은 언제나 '책이 갖고싶어요..아빠..'
책을 읽다 잠들고 ..잠에서 깨자마자 등교시간이 임박하도록 이불 속에서 책을 읽던 나..
학교에서 돌아오면 방문이며 창문을 꼭 닫고 또 그렇게 책을 읽어대던 나..
엄마 없는 하늘아래나 플란더스의 개를 읽을 때 마다..눈물을 펑펑 쏟곤 하던 나..
알프스의 소녀 하이디나 빨간머리 앤을 읽으며 소녀다운 꿈을 키워가던 나..
엄마는 제발 나가서 동네 아이들이랑 놀아라며..그런 나를 걱정하시곤 했었다.
중 2 때..친구들 앞에서 시범을 보이는 중..공중에 떠있는 나..
나의 소녀시절..
열 네살에 나는 유독 심하게 사춘기를 앓았다.
창 밖의 하늘만 바라봐도 흘러가는 구름만 봐도..이유없는 눈물이 주르르 흐르곤 했었다.
내 갸녀린 어깨 위에 파랑새 한마리가 내려와 앉아주기를 간절히 바랬던 나..
파랑새 한 마리만 있다면 외롭지 않을 것만 같았던 그 시절..
그렇게 눈물짓곤 하던 나를 언제나 바라보는 눈길 하나가 있었다.
무심결에 고개를 돌릴 때 마다 마주치던 ..세상에 다시 없을 고운 눈매의 그 아이..벗님..
내 책가방 속에 몰래몰래 넣어두던 벗님의 쪽지들..
그렇게 나누었던 아카시아 교정에서 피어난 아름다운 우정..그리고 사랑..내 첫사랑..벗님..
테리우스라 불리던 국어 담당의 담임 선생님..
소월의 시로 만들어진 갯여울이란 노래를 너무나 감미롭게 불러주시던..
우리 소녀들뿐만 아니라 여선생님들의 우상이기도 하셨던..선생님..
틈만 나면 소월의 생애와 시를 이야기해주시던 ..
아~~30년이란 세월 속에서도 어쩌면 선생님의 음성이며 눈빛이며 입매까지 이리도 생생할 수 있을까..
마치 어제인듯..
도서관 담당이셨던 선생님을 쫓아 도서부원이 된 나는 방과후..
언제나 도서관에서 책정리며 대출반납 일을 했었다.
도서관의 누렇게 바랜 책에서 나는 그 푸른 곰팡내 같은 책내음을 참 좋아했었다.
테리우스 선생님만큼..나의 벗님만큼..
내 소녀시절의 아름답고 행복한 추억은 이것이 다이다..
불행하고도 슬프게..참 억울하게도 여기서 끝이다.
열 네살 ..학성여중에서의 그 일 년만이 가장 꿈많고 아름다워야 할 내 소녀시절 추억의 전부이다..
믿어지는가..그 순백한 시간이 고작 일 년이라는 것이..그대들은 믿어지는가..
왜 또..주책없는 눈물이 흐르는지..
2학년이 된 첫 날..나도 모르는 사이 전학통보를 받았고..
그렇게 예기치 않게 갑작스레 나는 가장 아름다웠던 나의 한 시절과 이별을 해야만 했다..
나의 벗님과 아카시아 교정..친구들..테리우스선생님과도..
그 후의 이야기는 나의 기억에서 영원히 지우고픈..
어쩌다 꿈이라도 꾸면 악몽이 되는 그런 어둡고 고통스런 날들이였다.
따로이 자세한 얘기할 날이 있겠지만..나는 기계체조 선수였었다.
선수층이 부족한 체조계에서 죽어도 하기싫다며 버티는 나와 연이를
강제전학을 시키고..그렇게 그 구렁속으로 던져버린 것이다.
그렇게 2년을 전지 훈련이다 합숙이다 하며..자주 집을 떠나고 ..
평범한 학교 생활과도 멀어지게 되었다..
물론 책과도 가까울 틈이 없었다.
운동을 밤 10시까지도 예사로 했었으니까..그랬으니까..
그 당시의 운동계는 지금보다 더한 구타와 지옥훈련이란 게 있었다.
아~~그걸 어찌 다 말로 할 수 있을까..
그 고통의 날들을..
그 캄캄하고도 깊은 수렁의 날들을..
가장 감수성이 예민한 소녀시절에 ..내가 겪어야만 했던 ..눈물과 고통의 날들을..
오늘은 그만 쓰겠습니다.이쯤에서 내 인생의 여행이란 글의 전편을 마감하려 합니다.어쩌다 보니 주제와도 동떨어진 듯하고..아직 가야할 여정도 많이 남았습니다.후편은 여의하옵는대로 다시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이 글은 릴레이 글입니다.아르테미스님이 내 인생의 여행이란 제목으로 바람 될래님에게 릴레이글쓰기 바톤을 주시고..바람 될래님은 다시 쌀점방님께 바톤을 주시고..쌀점방님께선 저에게 다시 바톤을 넘기셨습니다.릴레이 글쓰기라는 거..처음이라 ..주저했지만.. 바톤을 받은 사람은 어쨌든 그 바톤을 다음 주자에게 무사히 건네줄 의무가 있기에..두서 없는 나의 이야기 올렸습니다. 저는 이 바톤을 박씨아저씨에게 넘기겠습니다.내 인생의 여행이란 제목으로 릴레이글 써 주시기 바랍니다.아마 멋진 여행이야기가 나올 듯 합니다.
- 벗 님-
내가 저렇게 작은 아가였다는 게..
플로라님도 아가였겠죠..?
아마 눈이 참 크고 맑은 아기였을 거 같아요..
참..세월이 이토록 흘렀네요..
울엄마..참 고우셨다는데..
운동회때 사진 보면..
엄마도 아빠도 참 말라계신 거 보면..
우리들 키우시느라 한참 고생하실 때인가 봐요..
너무 말라 살 찌는 게 소원이라시던..
나 어릴적의 울엄마가 문득 떠오르네요..
39키로 40키로..이렇게 나가셨다니..
원래 어릴 때 ..남자같이 생긴 아기가
크면 미인이 된다 그러던 걸요..후훗~~
눈물이 왜 나는지 ~~~
좋은 하루 되세요.
저도 생각하고있었던 분인데요..
결국은 제가 넘기지 않아도 받으셨네요..ㅎㅎ
글이 화려하지않지만 그렇다고 초라하지도않은
내 어린시절까지 생각할수있게 해주신 감동적인 글 잘읽었습니다..
점방아저씨가 벗님한테 넘긴 이유가 다 있었네요..
마음속 잔잔한 파문이 생겨 저도 어린시절부터 지금까지의 성장과정(?)을
글로 한번 옮겨보고싶게 합니다..
지금 난 릴레이 바통 저번에도 한번 받아서 머리 아픈데...
엇그제 또다른 바톤 받았고...오늘 또다른 바통 받았고...머리가 터질라 카는데~~~
진짜로 미쳐부리겠네요~주제도 다르고...한편으로 끝장을 보아야 할텐데...
제가 알기론 이번껀 주제가 좀 다를거같은데요..
저어기~
아르테미스님께 가서 떽~ 하심이..ㅎㅎ
기대만땅하고 있겠슴돠...
제가 스타트 끊었거든..ㅎㅎ
그런 사정이 계신 줄 알았으면..
제가 다른분께 넘겼을텐데요..
전 처음 해 보는 거라..그런지..부담되더라구요..
박씨아저씨 뷰에 글 올릴 때마다..
그냥 쉽게 쓰는 게 아니구나..그런 생각도 들었구요..
나야 부담없이 일기식으로 글을 쓰니..
그저 술술~~내키는대로 쓰지만..
추천받고 ..뷰 올리고 ..그럴라면..
머리 쥐나겠다 시픈 생각 들더군요..
여튼 ..대단한 열정의 아저씨..
어쩌겠어요..바톤은 이미 아저씨 손에 있는걸요..
알아서 하삼~~^,^*
하여튼 여자는 믿으마 안된다~ 특히 이쁜 여자는 더더욱~그리고 아줌마는 더~더더더더더더더더~
믿지 말라는 박씨아재의 말씀^^
아참 아직 상편이니까 하편 다 쓰고나면 그대부터 써야지~ 바통아직 넘어오지도 않았넹^^
추억
시간
기억
흔적
그리고 정지된 순간
흑백사진을 보면
난 자꾸 눈앞이 뿌얘져서.......
그때는 다 그리합니다.
진자로
그때는 다 그리합니다.
글........
참......
너무........
편안하게 잘 읽었습니다.
중간에 쌀점방만 빼면........
바로된 릴레이 인디.........
어째 초자를 낑가 가지고.........
후편 기다립니다.........
힘들지 않게 천천히......
고맙습니다.
자꼬자꼬 지난날만 돌아보니 그런거 같기도 하고...
아직 파랗게 젊은 날인데.....
눈을 들어 하늘을 보면 먼 훗날의 아름다운 영화같은 자신이 보일 수도 있는데...
다 담겨져 있는 듯 합니다..
국화꽃 향기 흩날리는 참 좋은 계절에
세상의 빛을 보셨네요..
어려서 부터 책을 그리 좋아하셨으니
이리 잔잔한 감동의 글을 쓸 수있는
밑거름이 된 것이 아닐까 싶어요.
하편도 기대되옵니다..벗님.
아 이게 릴레이 글이였군요..
박씨아저씨..어떤분인지는 몰라도
살짜기 엿보아야 겠습니다..
이리 말하믄 부담되시려나? ㅎㅎ
저는 제가 태어난 날이라서가 아니라..
가을날의 정점에 섰을 때가 ..
가을이 가장 아름답게 물들었을 때가..
참 좋았어요..
국화향 들판 가득한 날이..
저는 너무 좋았어요..
저도 릴레이글이란 게 있는지..
처음 알았어요..
블로그상에서 종종 있는 일인가 봐요..ㅎ~
박씨 아저씨..
그방..가시면 정신 없어요..
을매나 복작거리는지..
아마 본인도 정신 없을 때 많을걸요..ㅋㅋ~~
음~~그래도 사람이 참 진국이예요..
정말 열심히 사는 ..참 소탈하고 성실한 남자..
한 번 가보세요..
하도 바빠..답글 같은 건..그리 살갑게 쓰진 않아요..
그래도 그 많은 사람들 일일이 다 챙기는 거 보면..대단하다 싶구요..
그리고 절대 부담같은 거 가지는 스타일 아니니..염려 놓으시구요..^^*
그리고 그많은 댓글에 살갑게 답글 달아주면 아예 소설책써야 하는뎅^^
답글 짧게 썼다고 은근히~~~
가을의 초입에서 벗님의 인생 전반부를
들여다 보는 글속에서 고스란히
한 인간의 삶에 박수를 보냅니다
더 행복한 가을 날 되세요^^
좋은 글들
참 잘 읽었어요
<유달리 책을 좋아했던 아이..
가장 감수성이 예민한 소녀시절에 ..내가 겪어야만 했던 ..눈물과 고통의 날들을..>
하지만 어둠의 세월은 아니네요.
벗님이 소녀시절에 겪었던 게
어쩌면
지금의 가족을 대하는 거울이라 여겨집니다 .
마치 뼛속에 못이 하나 박힌듯한 아픔도 함게 연상되곤 하죠..
저 흐릿한 사진속 까만 눈망울의 소녀..제게도 저맘때의 사진이
아마도 두장쯤 있는것 같긴 하네요..이런 그리움이 눈물을 부릅니다..
뼛속에 못이 박힌 듯한 아픔..
여행님의 유년에도 그런 아픔이 있으셨나요..?
아픔이라기보다 고통..돌아보면 악몽같은 날들..
아직까지도 그 시절의 악몽을 꾸곤 합니다.
얼마전에도 그 시절 꿈을 꾸고..
꿈이였지만 무서웠고 괴로웠습니다.
지난 이야기죠..저 빛바랜 사진 만큼이나 오래된 ..
운동회 때 마다 엄마는 가족사진을 찍으셨죠..
저 날의 순간순간이 생생합니다.
햇살에 눈이 부셨고..
개구진 우리반 남자 애들이 앞에서 놀리고 있었지요..
부신 햇살에 찡그리면서..
앞에서 놀리는 친구들을 보며 웃으면서..
그리고 찰칵~~
그렇게 내 유년의 한 순간이 사진으로 남겨진 것이죠..
저 맘때의 여행님 모습..궁금하네요..^^
요즘 넘 바빠서 블로그 나들이도 잘 못하고 있습니다.
아픔도 있구요 몸이 아픈 건 치료하니 괜찮아지고 이젠 마음이 아파지네요
가을을 무지 타는 중 언제나 계절이 바꾸면 내 탓인냥 그러고 돌아댕깁니다.
아파야 하는것이 당연한것처럼
스캔을 뜬 흑백 사진속 아이와 아빠, 엄마 그 풍경이 그대로 머물러 주었으면 하는 아스라한
사진이군요 저런 빛깔의 사진속을 들여 다 보면 왜 그리도 눈물이 흐르는지... 벗님이의 어리고 고운 시선
아릿하고 곱습니다.
제 블로그에 오시는 빨강머리님들이 있어 닉을 엉겹결에 바꾸었는데
다시 밝아지고 싶어서 앤이 되고 싶어서요 .
그렇게 사춘기 시절을 보내셨군요ㅣ
힘들었나 봅니다
아픈 기억들 너무 되새김질 말으셨음 합니다
잘 안되지만 해 보자고 말씀 드리고 싶네요
그러고 보니
제 사춘기 시절은 너무 밋밋하게 지나갔네요^^
댓글 처음부터 끝까지 찬찬히 읽어보니 참으로 걱정이 앞서네요~ 그렇다고 몇줄의 짧은 글로
40년넘는 박씨아자씨 인생을 이야기하라니..
소설책으로 써도 몇권은 족히 될텐데.... 일타 이피~도랑치고 가재잡고~뭐 이런거 있으면 좋을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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