벗님, 들어보셔요..
촉촉히 스며드는 빗물이 정겹지 않으세요.
하얀 박꽃은 밤에만 피는가 보아요.
달빛을 쏙 빼닮았어요.
모윤숙의 '렌의 애가'를 읽다가
빗소리가 내 마음에 젖어들어 펜을 들었어요.
벗님,
빗 방울 하나에 보고픈 얼굴이 하나씩 떠오릅니다.
잊으며 살아왔더랬어요.
보고픔을 굶주리며 잘도 견뎌 왔답니다.
벗님,
비 오는 날이면 왜 이리 좋은지 모르겠어요.
잔잔한 호수위에 떠다니는 조각배처럼
이 맘은 조각배 위에서 안식을 얻어요.
벗님..
어제는 죄송했어요.
당신은 저의 이상이고 꿈이고 신앙이예요.
어찌 당신을 저 하나의 이성으로 착각하였는지..
참 철없는 언어들을 써 버렸어요.
벗님.
그렇게 오랜 날을 당신을 잊으며 살아왔는데..
당신은 변함없이 머물고 계셨군요,
감사해요.
86.9.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