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하루 전..
이른 아침부터 어머님께선 얼른 매살라 큰댁으로 들어가라 재촉하신다.
매 해..명절이며 때마다 큰댁형님 두 분이서 모든 음식을 준비하셨다.
멀리 산다는 이유로..
살짝 한 다리 건너 작은집이라는 핑계로..
우리 집 세 며느리들은 얌체같이 손님처럼 다녀가곤 했던 것이다.
그나마 올해는 세 며느리 중 막내며느리인 나만 왔다.
고3이 있다는 이유로 불참한 손윗동서..
고3 딸을 둔 인아씨도 남편이..
시골 가지 말고 애나 잘 챙겨라며 먼저 말을 꺼내더란다.
명절에 시댁 안가도 된다는 프리미엄..
요즘 고3 자식을 둔 며느리들의 특권이기도 하다.
♥
이른 아침 딸들과 큰댁에 당도하니..
아직 우리 말고는 아무도 와있지 않았다.
큰댁 형님께선 별루 할 일도 없으니 쇼파에 앉아 TV나 보구 있으란다.
잠시 후에 의성 동서가 오구 조카며느리인 범희네 댁이 오구..
그리고 대구동서도 도착했다.
큰댁 작은형님은 주일이라 교회에 가셔서 불참하시고..
우리가 해야 할 일이래 봐야 고작 콩나물 다듬고 전 몇 가지 부치는 일..
손이 마니 가는 음식들은 형님께서 이미 완벽하게 준비해놓으셨다.
추석 하루 전날 이리 한가롭다.
형님이 미리미리 수고하신 덕에..
큰댁 형님이 하신 음식들은 하나같이 다 맛깔지다.
딸들은 집에 돌아와서도 큰어머니가 해주신 음식타령을 한다.
음식도 잘 하시지만 집 안팎으로 화초도 참 잘 가꾸신다.
형님네 화초들은 또 하나같이 싱싱하고 풍성하고 싱그럽다.
종갓집 종부로 시집 오신 큰댁 형님..
이젠 손주를 셋이나 두신 할머님이 되신 형님..
시집 와서 여태껏 명절날 친정에 가신 적이 단 한 번도 없으시단다.
층층시하 증조 할머님 할아버님 ..큰아버님 큰 어머님..
그리고 네 분의 작은 아버님과 작은 어머님..그 아래 식솔들..
나 처음 시집 갔을 땐..
명절에 시댁식구들만 모여도 40여명은 되었던 거 같다.
거기에다 종갓집이다 보니..
이른 아침부터 손님들은 또 왜 그리 끊이질 않고 오시던지..
그 와중에도 나는 친정가야 한다며..
설거지만 해놓고 쪼르르 빠져나오곤 했다.
아니..우리 집 세 며느리들은 다 그랬다.
지금은 돌아가신 100수를 코 앞에 두신 증조할머님께서..
어느날 이런 말씀을 하셨다.
할머님께는 다 똑같은 손부들인데 왜 큰집 손부들만 일을 하느냐구..
나는 그 말씀이 오래 가슴에 찔렸었다.
형님이 차려주신 맛난 점심을 먹고 산책 삼아..
어제 낚시하며 보아둔 동네 입구의 폐가로 나왔다.
폐가의 이끼 낀 담장 아래에 애잔히 피어있던 풀꽃들 생각이 났다.
담장 아래에 피어난 풀꽃들에겐 언제나 시선이 간다.
마음이 머문다.
큰댁 마을에도 폐가가 제법 눈에 띄었다.
마을 입구에 있던 집들..
몇 해전만 해도 온기가 흐르고 사람 사는 내음이 물씬했었는데..
위의 집은 큰댁 바로 앞에 있던 아버님 사촌 되신다는 아재네집..
명절마다 아침 일찌기 건너오시곤 하셨는데..
돌보지 않은 흙담은 무너져 가고 심어놓으신 포도나무의 포도알은..
고대로 말라비틀어져 있다.
아랫집은 교장선생님댁이라 그랬던가??
옛날식 화장실로 보이는 나무문엔 초록이끼가 잔뜩 끼었다.
그 나무문 앞에 서있는 한 그루 무궁화나무..
모든 것들이 쇠락의 길로 접어들어 낡아가고 스러져가건만..
무궁화꽃은 해마다 더 환하게 피어나고 있다.
명절 하루 전..형님 일손 덜어준다고 와놓구선..
콩나물 두 봉지 다듬고 배추전 부친 게 다이다.
괜히 와서 점심이나 축내고 시댁으로 돌아가는 길..
형님이 슬그머니 참기름 두 병을 챙겨주신다.
도시에서 사먹는 거랑은 꼬신내가 다를거라며..
♬~~ 시오리길- 김두수
- 벗 님 -
저도 올해는 고3들 둔 특권으로 열외했는데..
이 글 읽으니 좀 뜨끔합니다..ㅎㅎ
작고 여리고 약한것에 마음이 먼저 가는게 우리의 본심인가봅니다..
벗님의 소소한 사진들 속엔 사랑과 감성과 이야기가 들어있어서
가벼운 수필집 읽듯 재미도 있고 느낌도 있네요..
오랜만에 출장지에서 노트북 또닥거리니...잠은 언제오려나...ㅎㅎㅎㅎ
올해부터 나이드신 숙모님들 추석전날 음식하러 오시지 못하게 했다. 며느리들이 알아서 다한다고~~ㅎㅎㅎ
정말 마음에 들어요. 벗님, 님이 들려주시는 고운 얘기와 고운 사진들....................
감사해요.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