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펠냉장고..
나 시집오고 두 번째 냉장고다.
신혼 때 사용하던 첫 냉장고는 고장이 나서 버린 게 아니라..
신혼 단칸방에 들어가는 작은 냉장고를 사다보니
용량이 너무 작아서..
우나 초등학교 1학년 때 저 지펠냉장고를 새로 장만했었다.
그렇게 햇수를 따져보니 장장 18년을 동고동락했다.
불과 몇 년 되지 않은 것 같은데..18년이라니..
냉장고 수리하러 오신 기사아저씨도 깜짝 놀란다.
보통 냉장고 수명이 10년 안팎이라며..
그 세월 동안에 큰 탈 없이 우리랑 함께 해준 지펠..
사람으로 치자면 큰 사고나 병치레 없이 잘 살다가..
수명이 다 하여 떠나는 것과 같은 ..
나는 18년이나 무탈하게 냉장고를 사용한 것이 자랑스러운데..
나랑은 사고방식이 참 다른 우나는..
요즈같이 신제품이 쏟아져 나오는 세상에
냉장고 하나를 18년이나 사용했다는 사실이 창피하단다.
우나의 그 마음이 무엇인지 안다.
세련되고 고급스럽고 럭셔리한 ..
그런 삶을 지향하는 우나에겐..
낡고 구질구질한 것을 붙들고 있는 이 엄마가 늘 불만이였을 것이다.
딸의 마음을 ..사고방식을 ..십분 이해하고 존중한다.
다만 내가 지향하는 삶과 다를 뿐이다.
♥
1777
잠에서 부시시 깨어 주방으로 온 쏭이..
" 오늘 새 냉장고 온대.."
" 그럼 이 냉장고는 어떡해?"
"새 냉장고 갖고 오신 아저씨들이 수거해 갈거야.?
"엥? 그럼 이 냉장고랑 이젠 마지막이야?"
"어케..그동안 엄청 정들었는데.."
우나랑 다르게 쏭이는 냉장고와의 이별을 진심 아쉬워 한다.
하긴 그랬다.
쏭이는 아침마다 잠에서 깨면 지펠냉장고 앞에 서서 키재기를 했었다.
" 꺄악~엄마,, 나 또 키컸엉.이러다가 나 냉장고보다 더 크는 거 아냐?"
키 크는 걸 싫어하는 쏭이는 아침마다 냉장고랑 키재기를 하며..
또 키가 컸다고 비명을 질러대곤 했었다.
문득 나도 서운한 마음이 왈칵 든다.
마치 오래 정든 사람을 떠나보내는 것 같은..
물론 새 냉장고가 도착하면 금새 잊어버리겠지만..
18년이나 동고동락했던 지펠냉장고와의 작별이 무척 아쉬웠다.
굿바이..지펠..
- 벗 님 -
- 산
- 2018.07.27 14:09
- 벗님
- 2018.07.30 22:02
산님의 깊고 하늘한 감성이 부러울 따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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